1 차 귀환과 성전 재건 (스 1 - 6장)
고레스 왕의 칙령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현실은 암담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고국의 언어를 잊었으며 많은 혼혈아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혈통을 강조하며 선민의식을 가졌던 이 백성에게는 이러한 현상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먼저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재건은 스룹바벨과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성전 재건은 다리오 왕 6년에 봉헌하게 되는데 이 성전을 제2성전, 혹은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모양은 솔로몬 성전께 비해서는 매우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2차 귀환과 개혁운동 (스 7-1O장: 느 7-1O장)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영적인 개건에도 힘을 썼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 으로 율법에 익숙한 학사 겸 제사장이었고. 말씀 부흥에 사명을 가진 자였습니다. 2차 포로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성전이 완공된 후 58년이 지난 후로 포로 귀환자들이 영적으로 타락한 기간이었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성전과 성벽의 재건 못지않게 내적으로 무너진 백성들의 영성 재건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에스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백성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고 말씀으로 영적 각성운동을 전개해 갔습니다.
3차 귀환과 성벽재건 (느 1 - 7장)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고위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근동 지방의 풍습에 의하면 술잔을 맡긴다는 것은 목숨을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정세는 권력의 투쟁과 음모가 상존하고 있어서 독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술 관원이었다는 것은 그가 대단히 높은 자리에서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궁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자원하여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제3차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이방인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용기와 지혜로 이들을 물리치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하였습니다. 성벽의 완성은 이 공동체의 회복과 영성회복에 대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