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대왕 시대 7대의 대제사장 임명권 발동 (BC 37년-BC4년)
1). 49대 아나넬 대제사장 (BC 37-BC35년, 헤롯 친구, 헤롯 첫 대제사장)
헤롯의 친구인 아나넬을 바벨론의 거주하는 유대인의 지지를 얻으며 파격적인 임명을 했다
아나넬은 헤롯 시대에 처음 임명된 대제사장이다
헤롯은 유대 힐카누스 왕가 마지막 왕인 안티고누스 2세 (BC38년)가 죽은 후 하스몬 왕조에서 대제사장 직분을 맡을 사람은 당연히 알렉산더 2세의 아들 아리스토 불러스3세 이었으나 그간에 하스몬 가문이 왕조의 힐카누스 왕가에 대한 대제사장을 겸한 통치시대에는 그 권한이 상당했음을 알고 대제사장의 권한을 축소시키려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을 자기 수하에 두려고 무명인인 바벨론에 거주하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아나넬을 불러와 대제사장을 임명했다 (유대인 정통파 혈통은 오직 유대와 예루살렘의 본토에 사는 정통파 혈통 유대인으로 인정되었다 )
2). 50대 아리스토 블루스 3세 대제사장(BC35년-BC34년)
아리스토 블루스 3세의 모친은 힐카누스 2세의 딸 알렉산드라였으며 왕가 결혼 통례에 따라 힐카누스2세의 동생인 아리스토 불루스 2세의 아들 알렉산도와 결혼하였다
자녀로는 딸. 헤롯의 둘째 아내 미리암네 1세와 남동생 50대 제사장으로 단명한 아리스토 불루스 3세다 (알렉산드라는 헤롯 대왕 의해 부친과 두 자녀와 두 외손자와 자신까지 죽음을 맞는다 )
BC35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헤롯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어 약 1년 만인 BC34년 18세에 헤롯에 의해 죽었다
아리스토 블루스 3세의 임명 동기와 죽음
BC 37년 헤롯의 장모요 힐카누스 2세의 딸인 알렉산드라는 아나넬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한 것이 아스몬 가문에 대한 굴욕적 처사라며 헤롯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BC35년 그녀는 프톨레미 , 왕조 클레오파트라 7세와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이용하여 헤롯이 아나넬을 대제사장직에서 쫓아내고 자기 아들 아리스토 블루스 3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BC35년 10월 장막절에 17세의 아리스토 블루스3세가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 복장을 하고 제단에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의 호감이 하늘에 닿을 듯 함으로 헤롯의 비위를 건드렸다
BC34년 헤롯은 여리고에 있던 하스몬 왕가의 궁전 근처 연못에서 아리스토 불루스 3세(당시 나이 18세)가 수영하고 있을 때 신하를 시켜 그를 익사시켰다 이후로 헤롯은 하스몬 왕가 후손들을 다시 대제사장직에 임명하지 않았다
3). 51대 아니넬 대제사장 (BC34년-BC 30년, 재 임명)
헤롯 대왕은 아리스토 블루스 3세가 죽자 친구 아니넬 재임명하였고 바벨론 주거하는 유대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며 환호를 받았다
4). 52대 예수 대제사장 (BC 30년-BC24년, 파비의 아들 예수)
애굽 알렉산드라 및 그 외에 애굽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지지를 얻으려 했다
헤롯은 아나넬을 파직하고 파비의 아들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파비라는 성이 애굽의 레온토 폴리스에 이는 묘석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파비가 애굽에서 온 가문임을 추정케 한다.
헤롯은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얻고자 아네넬을 임명했던 것처럼 애굽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제사장을 임명하여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다시는 혈통직과 평생직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으며 대제사장직은 그 본래의 힘과 지위가 상실되었다
헤롯 이후 AD70년 로마에 멸망하기까지 28명(30명)의 대제사장 가운데 파비 가문은 세 사람이다
파비 가문 - 애굽 및 애굽 알렉산드라 거주 유대인의 지지를 받으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