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오 빌라도2
나사렛 예수는 유대인보다는 오히려 로마인에게 더 친근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큰 군중이 모여 있는 실로라는 곳을 지나다가, 군중에 둘러싸인 젊은이가 나무에 기대어 선 채로 군중을 향하여 조용하게 연설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라고 누군가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연설을 듣고 있는 군중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어서 저는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30세가량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평온한 얼굴을 본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저 검은 턱수염과 황갈색의 안색을 가진 무리들과 어떻게 대조할 수 있겠습니까?
11. 제가 온 것이 예수에게 방해가 되게 하지 않으려고 저는 계속 걸었으나 제 부관에게는 군중 속에 들어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제 부관의 이름은 만류스로서 그는 카타린을 잡으려고 에투루리아에 주둔한 적이 있는 공작대장의 손자입니다. 만류스는 유대 지방에 오랫동안 거주한 고로 히브리 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충성하여 저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총독청에 들어서자 저는 먼저와 있는 만류스를 발견하였으며 그는 실로에서 예수가 한 말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12. 제가 읽어본 어떤 철학자의 작품에서도 예수의 말에 비교될 만한 것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적인 유대인 중 한 사람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자유를 그 나사렛 젊은이에게 허용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지혜로운 말 때문이었습니다.
13. 저에게는 그를 체포하여 본디오로 추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로마 정부가 사람을 다루어 왔던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상반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보호의 손길을 그에게 뻗쳐 주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행동하였고 말하였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연설하거나 또 제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관청의 제재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인 것일 것입니다.
14. 예수에게 허용된 무제한의 자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유대인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예수가 후자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그 나사렛 젊은이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정략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는 그들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또 한 번은 부자가 많은 헌금을 내고 뽐내는 것을 보고 한탄하며, 가난한 자의 한 푼이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15. 예수의 오만한 언동에 대한 항의가 날마다 총독청에 줄을 이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로 불리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예수에 대한 진정서가 가이사에게 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처사는 원로인에게 재가를 받은 것이었으며, 파르티안 전쟁이 끝나면 저에게 증원군을 보내주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폭동을 진압하기에는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도 허약한 고로, 저는 힘없이 물러섬으로써 총독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성의 평온을 되찾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습니다.
16. 저는 예수에게 글을 써 보내어 총독청에서 한번 만날 것을 청하였습니다.
예수가 왔습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의 유약한 감정은 모르는 사람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나사렛사람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는 저의 접견실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다리는 쇳덩이로 된 손으로 대리석 바닥에 붙여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으며, 그 나사렛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서 있는데도 저는 마치 형사범처럼 사지를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제 앞에까지 다가와 서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왔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신들과 영웅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화가들이 아직 그려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17. "예수여," 하고 드디어 저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사렛예수여,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대에게 연설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였소.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소. 그대의 말은 현인의 말이오. 나는 그대가 소크라테스 나 플라톤을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에는 그대의 설교는 다른 철학자들의 그것을 능가하며 단순하고도 장엄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황제께서도 알고 계시며, 그를 허락한 것을 스스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설교가 강력하고도 원한 깊은 적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 드려야겠소.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오. 소크라테스에게도 대적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증오의 희생물이 되었다오.
그대의 경우는 그대의 설교가 그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것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으로 그들이 나를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소.
그들은 로마 정부가 그들에게 허용한 작은 권리마저도 나와 그대가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다면서 고소까지 하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서, 이제부터는 그대가 설교할 때에 좀 더 신중하고 온화한 말로 하며, 그들을 고려하여 대적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리석은 군중들을 충동질하여 그대를 대적하지 않도록 하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의 도구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오."
18. 그 나사렛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의 군주여, 그대의 말은 참된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격류를 명하여 산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계곡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버릴 것입니다.
그 급류는 자연과 창조주의 법칙에 순종한다고 그대에게 답변할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 급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계십니다.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사론의 장미가 피기 전에 정의의 피가 엎질러질 것입니다."
"당신의 피는 엎질러지지 않을 것이오."하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로마 정부에 의하여 허용된 자유를 남용하는 거칠고 오만한 모든 바리새인보다 더욱 값진 것이오.
그들은 가이사에 대한 음모를 꾸며, 가이사는 폭군으로서 그들의 멸망을 도모하고 있다는 말로 무식한 자들을 충동하여 황제의 관대하심을 공포로 조작시키고 있소.
19. 오만무례하고 철면피 같은 인간들이오! 그들은 악한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의 가죽을 쓰는 티베르강의 여우임을 그들 자신은 모르고 있소.
나의 총독 관저는 밤낮을 물문하고 그대에게 도피처로 제공될 것이오."
예수는 관심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으며, 근엄하고 숭엄한 미소를 띠면서 말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면 그때는 땅 위나 땅 아래 어느 곳에도 인자를 위한 도피처는 없을 것입니다.
의의 도피처는 저기에 있습니다."라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책에 기록된 말씀은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여,"하고 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의 요청을 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나의 통치하에 있는 지방의 안전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소.
당신은 설교할 때 좀 더 온건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나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떠할지를 그대도 잘 알 것이오. 와 주어서 고맙소. 잘 가시오."
20. "땅의 군주여,"하고 예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세계에 평화를 주던 바로 그날에 태어났습니다.
핍박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핍박을 예상하고 있으며, 나에게 길을 보여주신 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그 핍박을 잘 감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세상적인 사리분별과 지각을 삼가십시오. 성막에 희생 제물을 잡아놓는 것은 그대의 권력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한 후 그는 투명한 영혼처럼 접견실 휘장 뒤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압감에 해방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