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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전해지기 까지의 숨겨진 이야기

blessing u 2019. 4. 20. 19:00

창세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전해지기 까지의 숨겨진 이야기

성서를 깊이 분석하여 읽어보면 성서에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성서의 그 이야기가 기록된 그때의 역사와 문화를 병행하여 연구해보면 성경이 직접 말하지 않지만 그 이야기 전개 속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단, 지나치게 자의적 이거나 특정적인 어떤 관점에 치우쳐 유추할 경우 성서 본연의 메시지를 손상시키거나 진리가 호도될 위험성이 존재하므로 지나친 유추나 확대 해석은 피해야 할 것이다. 성서가 말한 사실 안에서,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틀 안에서 성서가 기록된 그때의 시대적, 문화적 시점에서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아담 이후 인류의 초기 역사시대, - 아마 씨족공동체 → 부족 공동체 → 지역공동체 → 국가 공동체, - 대략 이런 순서로 사회상 이 확대되어 같을 것이다. 아마도 아담 이후 초기 인류 역사시대는 당연히 씨족공동체에서 출발하여 부족 공동체 내의 가족형태로 인간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을 것이다. 위의 도표에서 나타난 족보에서 각 손들의 탄생 시점과 연령으로 보아 아마도 다음의 명제들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고 유추해볼 수 있다.

 

*아담은 밑으로 8대손(노아의 부친 라멕)까지 보았고 창조와 하나님 이야기를 그 후손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 이 56세가 될 때까지 살았고 노아가 태어나기 126년 전에 죽었다.

*셋은 노아의 탄생하기 14년 전까지 세상에 살고 있었다.

*에녹은 성경에 처음으로 의인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아마 에녹 은 아담으로부터 창조와 하나님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이를 그대로 믿었을 터이고 아들 므두셀라 에게 이 사실과 믿음을 전수했을 것이다.

*에녹이 지어준 이름 “므두셀라” 의 뜻은 “죽으면 터진다”라는 뜻이다. 위에 연대표를 보면 정말로 므두셀라 가 죽은 해에 홍수 심판이 임했다. 이걸로 본다면 성경에 처음으로 의인으로 기록된 에녹 은 처음 선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인류의 3대손인 에노스 부터 10대 손인 노아까지 같은 시대에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았고 이들은 아담과 2대손 셋으로부터 창세 이야기를 전수받아 창조의 하나님 이야기를 노아에게 전수했을 것이다.

*에녹은 창세 이야기를 노아에게 전해준 중간 교량이라고 가정해도 무리가 없을듯하다.

*노아는 위로 아버지 라멕 부터 7대조 조부, 인류 3대손 에노스 까지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신 에녹만 빼고 같은 시대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았다.

*노아는 아담, 셋, 에녹 제외한 인류의 3~9대 손으로부터 하나님과 창조 역사를 직접 들었고 전수받았다.

*노아는 위로 에녹을 제외한 7대 조상까지 직접 같이 살았고 밑으로는 9대손인 아브라함까지 같은 시대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

*노아는 아브라함이 58세 때까지 살아서 홍수와 방주의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직접 전해주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위로 9대 조부이며 인류의 두 번째 시조인 노아로부터 직접 창조와 하나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이를 자손에게 전한 믿음의 계승자이며 믿음의 조상이다.

 

*위 사실을 종합해보면 성경에 창세 이야기는 보통의 사람들이 언뜻 생각하듯 무수한 세대를 거치거나 첨삭됨 없이 매우 단순한 경로를 거쳐 가감 없이 전해졌을 걸로 결론지어도 될 것이다.

 

즉, 아담/ 셋 → 에녹/ 므두셀라 → 노아/ 셈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요셉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학문에 능했을 요셉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을 거쳐 전해진 창세 이야기를 기록, 후대에 넘겼을 것이다.

 

창 50:24~26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출애굽기 13: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요셉의 유해를 출애굽 때 메고 나간 위의 성경 기록에서 그 당시 애굽의 문화를 가지고 유추해보자. 현재 고대 애굽의 많은 미라들이 남아 잇는데 그중 많은 미라 안에서 그 미라가 생전에 아꼈을 법한 유물이 실제 나오곤 한다. 즉 어떤 미라에서는 금 등의 귀금속 유물, 또는 고대 애굽 종교의 “죽은자의서”등이 미라 몸 안에서 -(내장을 빼 낸 후에 집어넣은) 발견되곤 한다.

창 50:26에 요셉의 입관 때 “향 재료를 넣고” ... 무엇을 넣었을까? 단순히 방부재인 향일까? 아니면 다른 재료?

다른 재료를 넣었다면, - (애굽의 습관에 따라) 요셉의 성격이나 믿음을 보건대 금은보석 등은 아닐 것이고, 요셉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길 “그 무엇” 일 텐데 “그 무엇” 은 무엇일까? 추측건대 아마도 아담, 노아, 아브라함 거쳐 전해진 창세 이야기를 포함한 자신의 가족사 등을 기록한 “비망록”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추측은 성경에 기록 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후 사건 전개 과정 들을 볼 때 창세 이야기를 훼손 없이 보존하여 후에 모세오경을 포함한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토록 해 우리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주려 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 을 요셉의 유해(미라)를 메고 나가게 한 이 기록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요셉 사후 등극한 다른 바로 들에 의해 히브리 민족은 노예로 전락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때 그때의 애굽은 힉소스족 의 통치하에 있을 때였다. 힉소스족은 애굽 원 족속 아닌 이방 민족 정복자였다. 이런 역사적, 시대적 배경하에 일개 이방 히브리인이었던 요셉이 애굽 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이후 애굽인 들이 자신의 왕조를 회복하면서 이방 민족의 신분은 격하되고 히브리인들은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고대 노예들 에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교육”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특히 애굽의 히브리인들처럼 민족 집단 이 노예 계급일 때에는 더욱 그랬고 더 나가 이들을 단순노동자로 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민화 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런 경우 노예들에겐 글을 쓰거나, 배우거나, 서적 등의 소유가 금지되곤 했다. 애굽 치하 히브리인들 도 아마 이런 경우에 해당되었을 걸로 추측 할 수 있고 이런 사실은 요셉 사후 근 사백 년에 이르는 애굽 거주 시에 히브리 민족의 대한 성경의 기록이 매우 빈약함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즉 요셉 이후 히브리인들은 배우거나, 쓰거나, 서적 등의 소유가 금지되었을 거고, 그들이 소유했을 조상 전래의 문서들도 아마 거의 압수, 소각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가 삼백 년이나 지속되었다면 아담에서 노아, 셈 계보를 통해 전하여진 진실한 창조 밑 홍수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만 남고 소멸될 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기본 스토리 외에 족보, 각 계승자 들의 손 얻은 나이 밑 수명, 노아 때 대홍수 기록에는 자세한 일지가 곁들여져 있는데, 이런 기록은 단순한 구전을 통한 기억을 통해 전해지기는 어려운 디테일한 내용들이고 이런 내용들이 단순한 기억을 통한 노예들의 구전을 통해 삼백여 년이나 정확히 전승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즉, 창세와 족보, 홍수 이야기 와 그일지는 어떤 형태로든 문서를 통해 전해져야 정확하게 전달될만한 스토리인데, 노예로 전락해 문자를 사용하거나, 문서 소유가 금지되었을 애굽 치하의 히브리 민족 에겐 창조와 홍수 이야기 등의 디테일한 자세한 이야기가 전승되기는 어려웠을 상황이 삼백여년 이나 계속된 것이다. 이를 미리 아신 하나님은 요셉의 유해(미라) 안에 창세 이야기를 보존 시키신 것이다. - 물론 성경에 직접 기록되지 않은 유추된 결론 이긴 하지만 이런 섭리를 통해 창세 역사의 유일한 진실 된 기록인 “성경”의 진실 됨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본다.

*노아 5대손 벨렉 때 세상의 나뉨(창 10:25) 사건은 창 11:1~9의 바벨탑 사건과 동일 시 된다. 바벨탑 쌓은 사건은 바벨론 종교-인간 종교의 기원이며 바벨론의 기원이 된다.

*일부 성서학자 (진보적인) 들이 주장하는 “홍수 설화”(그들의 표현 빌리자면)의"길가메시 서사시”기원설은 처음부터 길을 벗어난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야말로 진실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인 노아 홍수의 기록을 바벨론 종교 (벨렉시대 의 나뉨-바벨탑 사건에 기원한)의 시각으로 왜곡하고 재해석한 또 하나의 홍수 이야기인 “설화” 이기 때문이다.

 

요셉의 유해(미라) 안에 보존된 창세 이야기 와 비망록을 원 소스로 하여 모세가 이를 창세기에 집대성했다. 위의 연표대로 하면 모세오경 은 출애굽 기간인 BC.1446~1406 기간에 기록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성경을 흔들려는 사탄의 또 다른 음모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이미 진화론으로 성공적으로 성경을 공격한 사탄은 또다시 성경을 공격하는데, 1875년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길가메시" 서사시가 양각된 토판들이 출토되었다. 이 토판들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 가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홍수 이야기 와 줄거리가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이 토판들은 기원전 20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창세기 기록 연대 보다 오~육백 년이 앞선다.

이 길가메시 서사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바뀌어있고 이 서사시에 등장하는 신들이 유일신이 아닌 복수의 신들 - 다신교 종교로 각색된 듯 한 스토리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토판들의 제작 시기 가 모세오경보다 오, 육 세기 앞서므로 모세가 이 길가메시 서사시 내용을 히브리적인 종교 와 민족 사관에 따라 각색한 것이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홍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우리는 성서의 정통성과 진실 됨을 믿는다. 바벨탑 사건이 기원전 22세기에 발생하고 언어가 달라진 함의 자손이 니므롯 과 그 후계자 들을 신격화하기 위해 진실한 창조와 홍수 스토리를 각색, 왜곡한 것이 이 길가메시 서사시 요, 단지 전술한 성경이 여러 요인으로 공식적인 문서화되기 전에 가짜 이야기가 먼저 제작된 것이 이 길가메시 토판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창세, 홍수 이야기는 기승전결 이 뚜렷하고 모순이 없고 특히 홍수 시 세세한 일지까지 기록되어 있는 반면 길가메시 설화는 스토리 전개만 비슷할 뿐 여타의 신화처럼 매우 조잡하고 과장된 바벨론 종교의 신화일 뿐이다. 단, 길가메시 서사시를 기록한 함의 자손들도 노아를 통해 구전된 창세와 홍수 이야기를 알았으므로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바벨탑 사건 이후 바벨론 종교의 사상이 첨가되어 단지 성서보다 공식적인 문서화 시기가 빨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되고 전해진 성경. ...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진실 되고 값진 것은 단연코 없다. 일부 진보적인 성서학자 들의 철없는 주장에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고 그럴수록 유일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마음과 영혼에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