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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이 작성된 이유

blessing u 2019. 7. 15. 08:36

사도신경이 작성된 이유

 

사도신경은 왜 작성되게 되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도신경의 초기 형태는 150년 경 이전에 이미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목사들은 기독교 회의 교리를 학습자에게 설명해야 했고 그 요약으로써 사도신경을 사용했습니다. 즉 세례 문답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12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학습자는 그 신조를 외워야 했고 세례 받기 전에 그 신조를 공적으로 고백해야 했습니다.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고백할 때 받는 것인데(마 28:19), 교회의 교육은 이 삼위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었고 사도신경에서 이를 요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215년에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적 전통』이라는 것에 보면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시행된 세례 문답에 관하여 쓴 기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세례 받는 사람이 물로 내려가면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세례를 받는 사람의 머리에 안수하고 묻습니다. “그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수세자는 “믿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머리에 안수하여 물에 담그고는 다시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즉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의 치하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수세자는 “믿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다시 세례를 주는 방식으로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용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래서 새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이 그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이 사도신경을 외워야 했고, 그저 외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잘 알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도신경은 단순히 세례를 받으려는 학습자에게 암송시키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문구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유명한 신학자들의 교리 문답 설교나 예루살렘의 시릴(Cyril of Jerusalem)의 설교집을 함께 읽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설교집이 일종의 교리문답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저 ‘암송’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문구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암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암기하여 실제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백하는 자에게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사도신경은 처음에 세례를 위한 신앙고백으로 사용되다가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교회 안에는 사도신경을 믿고 고백하고 암송하는 자들로 가득하게 된 것이고 자동적으로 사도신경이 오늘날처럼 공예배 시간에 암송하는 방식으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의미를 이해하기는커녕 암송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주는 경우가 허다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사도신경이 작성된 목적과 교회 안에서 사용된 목적에 합당치 않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다 보니 교회 안에 사도신경조차 ‘고백’하지 않는 불신자가 가득하여 교회 아닌 교회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