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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16개의 설교

blessing u 2024. 1. 30. 11:38

구세주의 16개의 설교

 

구세주의 설교들.

1. 그의 고향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을 가지고 행한 설교(4:16-30).

2. 하늘 나라의 특성에 관한 설교(산상수훈) (5-7;6:20-49;12:22-31,57-59 ; 16:17).

3. 하늘 나라에 관한 9가지 예증 설교(13:1-52;4:1-34;8:4-18;13:18-21).

4. 세례 요한에 관한 설교(11:7-15;7:24-30).

5. 심판과 부활에 관한 설교(5:19-47).

6. 12제자들을 보내면서 행한 설교(10:5-16,24-33,37,42 ; 6:8-11;9:3-5).

7.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6:26-59).

8.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에 관한 설교(15:1-20;7:1-23).

9. 마귀와 그의 자녀들에 관한 설교(10:1-18;8:33-59).

10. 선한 목자에 관한 설교(10:1-18).

11. 겸손과 지옥에 관한 설교(18:1-20;9:33-10:1;9:46-50).

12. 70제자를 보내면서 행한 설교(11:20-24;10:1-16).

13. 종교적 위선에 관한 설교(23:1-36;12:38-40;20:45-47).

14. 마지막 환란에 관한 설교(감람산 강화) (24:1-42;10:17-23;25:1-46 ; 13:1-37;21:5-36;12:11,12).

15. 아버지 집에 관한 설교(14:1-31).

16. 포동나무와 가지에 관한 설교(15:1-16:33).

 

구세주의 설교에 관한 간단한 요약.

1. 그는 한 설교를 행한 후에 거의 죽음을 당할 뻔 했다(1).

2. 그는 배 안에 앉아서 하나의 설교를 했다(3).

3. 그는 두개의 산 위에서 가장 긴 두가지 설교를 했다(2,14).

4. 그는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서 몇 가지 설교들을 했다(5,8,9,10,13,15,16).

5. 그는 제자들에게 두가지 설교를 했다(6,12).

6. 그는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하나의 설교를 했다(9).

7. 그는 그의 제자들을 변호하기 위하여 하나의 설교를 했다(8).

8. 그는 하나의 설교를 하는 동안 어린 아이를 예증으로 사용했다(11).

9. 그는 다락방에서 하나의 설교를 했다(15).

10. 그는 달밤에 하나의 설교를 했다(16).

11. 공생애 첫번째 해에 그는 기록상 하나의 설교를 했다(1).

12. 공생애의 두번째 해에 그는 기록상 다섯 가지 설교를 했다(2-6).

13. 공생애의 세번째 해에 그는 기록상 네 가지 설교를 했다(7-10).

14. 공생애의 네번째 해에 그는 기록상 두 가지 설교를 했다(11,12).

15. 마지막 주간 동안 그는 기록상 네 개의 설교를 했다(13-16).

 

 

. 첫 설교 : 이사야 61장을 가지고 나사렛에서 하심(4:16-30).

주의 : 예수님은 그의 낭독을 "주의 은혜의 해"라는 말에서 멈추고,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라는 이사야 612절의 마지막 하반절은 낭독하지 않았다. 주님이 이렇게 한 이유는 "은혜의 해"는 그의 초림에 속하고 "신원의 날"은 그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나에서 나사렛으로 가심(4:16-30).

 

1. 예수님은 그의 고향의 회당에서 성경을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2. 주님은 성령이 메시야에게 임하여 그가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된 이사야서 611,2절 말씀을 읽는다.

1)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2) 그는 상처받은 심령을 고칠 것이다.

3) 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할 것이다.

4) 그는 눈 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5) 그는 눌린 자를 자유케 할 것이다.

6) 그는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할 것이다.

 

4. 예수님은 그 때 자신이 바로 이사야 61장에 약속된 메시야임을 밝힌다.

5. 구약 예언의 성취 제12,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다(참조, 11:2;61:1,2;45:7;4:18,19).

6. 주님은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그들의 불신앙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엘리사와 나아만을 언급한다.

1) 엘리사의 시대에는 굶주린 유대인 과부들이 많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시돈 지방의 사렙다 과부 한 사람만을 먹이셨다(참조, 왕상 17:9-16).

2) 엘리사의 시대에는 유대인 문둥병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아람 사람 나아만 한 사람만을 고쳐주셨다(참조, 왕하 5:14).

7.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분노에 가득차서 실제로 주님을 죽이려고 시도했으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다"(4:30). 이것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했던 수많은 경우들 중에 첫번째이다(참조, 5:16;7:30;8:40,59;11:53,54). 그들이 주님을 미친듯이 미워한 이유들 중에 하나는 주님이 두 이방인들의 신앙을 실례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로 취급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나사렛을 방문한 두 기록들 중 첫번째이다(또다른 방문은 마 13:54-58;6:1-6에 나타난다).

 

2번째 설교 : 천국의 성격들에 관해 설교하심(57;6:20-49;12:22-31;57-59 ; 16:17). 주님의 말에 비추어 볼 때 천국시민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소유해야만 한다.

1)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가난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2) 그는 언젠가 즐거움을 누리고 위로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필요하다면 슬퍼하며 울어야 한다.

3) 그는 장래에 이 땅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온유해야 한다.

4) 그는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말라해야 하니다. 그러면 그는 만족을 얻을 것이다.

5) 그는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긍휼해야 한다.

6) 그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임을 알고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7)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기 위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8) 그는 그의 상급이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한다.

9) 그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10) 그의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

11) 그는 형제에게 부당하게 노해서는 안도니고 끊임없이 화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2) 그는 그의 형제의 아내에게 음욕을 품지 않을 것이다.

13) 그는 그 자신의 아내에게 마땅한 존경을 표할 것이다.

14) 그의 옳다라는 대답과 아니다라는 대답은 문자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완전히 신뢰받을 것이다.

15) 그는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16) 그는 불쌍한 자를 구제해야 한다.

17) 그는 은밀하게 구제하고, 은밀하게 금식하며 은밀하게 기도해야 한다.

18) 그의 기도 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1) "하늘에 계심"을 믿음 : 바울은 이 요소가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효력이 없다고 선언한다(참조, 11:6).

(2)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 "우리 아버지" '우리'(Our)라는 말은 성도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가 형제관계임을 암시한다. 성서의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보편적 부권(Fatherhood)은 나타나지 않지만, 성도들의 보편적 형제관계는 나타난다. '아버지'(Father)라는 말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관계를 암시한다.

(3) 경배 :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다윗은 기도의 이 부분이 너무도 중용하기 때문에 성전에서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을 택하여 임명하였다(참조, 대상 23:5;대상25:1,7).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존재하며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4:8)라고 찬송하는 특별한 네 천사들을 본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참조하라(4:23,24).

(4) 소망 :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왕국은 구약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저 거룩한 천년왕국이며(참조, 2:2-4;25:8;35:1,8,10; 65:20,25) 후에 신약에서 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었던 천년 왕국이다(20:1-6).

(5) 순종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귀절을 가장 훌륭한 본을 보여줄 것이다(참조, 26:39).

(6) 간구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것은 우리가 매일 식사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7) 동정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참조, 18:21-35;요일 4:20).

(8) 고백 :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핑계할 수 없다! 그러나 죄를 고백해야만 사함을 받을 수 있다(참조, 요일 1:9).

(9) 의지 :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결코 시험에 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으나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이 완전히 끝나기 까지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참조, 고전 10:13).

(10) 승인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역대상 29:10-19절에 나타난 다윗의 위대한 기도를 참조하라. 거기서 그는 실제로 예수님의 모범적인 기도의 마지막 귀절을 예견하고 있다.

19) 그는 하늘에 그의 보물을 쌓아 두며 이 땅의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이다.

20)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이다.

21) 그는 하나님이 그를 먹이고 인도하고 옷입힌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22) 그는 절대로 그의 형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23) 그는 사악한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것들을 논의하는데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24) 그는 구하는 것을 받고 찾는 것을 발견하며 아버지의 문을 두드림으로 그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25) 그는 항상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할 것이다.

26) 그는 그들의 나쁜 열매를 보고 거짓 교사들을 알아볼 것이다.

 

3번째 설교 : 천국의 예증에 관해 설교하심(13:1-52;4:1-34;8:4-18;13:18-21).

주의: 예수님이 사용한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는 용어는 다음에 나오는 개념들 중 하나(혹은 양자 모두)를 가리킬 수도 있다.

1) 창조로부터 천년왕국 때까지 하늘에서 인간사를 통치하는 성부 하나님의 일반적 통치. 따라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 이 왕국에 속한다(참조, 4:17).

2) 천년왕국 동안 예루살렘에서 인간사를 통치하는 성자 하나님의 구체적 지배. 이 때 죄의 저주는 사라지며 모든 사람이 완전한 환경에 거하게 될 것이다(참조, 11:15).

여기에 있는 그의 설교에서 주님이 일차적으로 가르키는 것은 처음의 일반적 개념이다. 그 설교는 9개의 주요 비유적 예증들로 구성되어 있다.

 

4번째 설교 : 세례 요한에 관해 설교하심(11:7-15;7:24-30). 주님은 요한에게 놀라운 찬사를 표하며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직설적이 고도 능숙한 설교가였다.

2) 요한은 모든 선지자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주님이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고 말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에 대해 두 가지 이론이 제기되어 왔다.

(1) 주님은 사도 바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3:8;고전 15:9).

(2) 주님은 천년왕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때에는 그 영광스러운 왕국의 가장 작은 백성이라도 어떤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일반 백성들과 죄인들은 요한의 말을 기쁘게 받아 들였으나 불경건한 유대 지배자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4) 요한의 대담한 사역으로 인해 천국에 대한 사탄의 반대가 시작되었다.

5) 요한은 구약의 엘리야의 영으로 왔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11:10).

여기서 예수님은 말라기 31절의 예언을 세례 요한과 연관시킨다. 그러나 주님이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라는 1절의 하반절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박국 220절에 따르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때 그리스도는 심판하기 위하여 오신다. 그러나 그의 초림은 은혜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하반절이 생략되었다.

 

5번째 설교 : 심판과 부활에 관해 설교하심(5:19-47).

1) 예수님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며 그에게 그가 행해야 하는 바를 모두 가르쳐주신다고 말한다.

2) 주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그에게 맡기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3) 주님은 이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약속한다.

4) 주님은 죽은 자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단시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확신시킨다. 주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자.

"이를 기잉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성서의 다른 귀절들에서 분명히 밝혀지는 것을 이 귀절들이 서로 다른 두가지 부활이 있으며 그 각각은 1000년의 간격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번째' 부활은 천년왕국 바로 직전에 있으며 거기에는 구약의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과 고난당한 성도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부활은 천년왕국 후에 있으며 거기에는 지금까지 살던 모든 불신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참조, 12:2;20:5,6,11-15).

5) 주님은 최소한 네 명의 충실한 증인들이 그의 신성을 증거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1) 세례 요한

(2) 그 자신의 역사(지금까지 그가 행한 17개의 이적)

(3) 아버지 자신(주님이 세례받을 때)

(4) 구약성경(특히 모세 5)

6)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그를 영접하려 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된다

 

6번째 설교 : 떠나는 열 두 제자들에게 설교하심(10:5-16,24-33,37-42;9:3-5;6:8-11).

1)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도록 명령받았다.

2) 그들의 사역은 다양한 것이었다.

(1) 그들은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2) 그들은 병자들을 고칠 수 있었다.

(3) 그들은 문둥이를 깨끗하게 할 수 있었다.

(4)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다.

(5)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다.

3) 그들은 이 모든 일을 무보수로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말씀을 전해듣는 사람들이 그들을 먹이고 입힐 것이다.

4)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정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5) 그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는 성읍을 떠날 때는 그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야 했다.

6) 그들은 흔히 이리 가운데 보내진 양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결해야 했다.

7) 그들은 박해받을 것을 예상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이미 그들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바 되었기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었다.

8)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면 그리스도도 장차 그의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시인할 것이다.

9) 그들은 아비나 어미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했다.

10) 그들은 장래에 그들의 상급을 함께 받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선지자로 취급받을 것이다.

 

3. 주님은 그 12제자들을 여섯 팀으로 나누어 보낸 후에 홀로 전도하기 위하여 친히 나간다(11:1).

 

4. 주님은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12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난다(14:1-13;6:14-29;9:7-9).

1) 요한이 헤롯이 그의 도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이 부당하다고 대담하게 그를 비난했기 때문에 헤롯은 그를 투옥시켰다.

2) 헤로디아는 매우 화가 나서 요한을 죽이라고 요구 했으나, 헤롯은 그를 두려워하고 얼마동안은 그의 메시지에 관심까지 기울이는 것 같았다.

3) 그러나 헤로디아는 근녀의 아름다운 딸의 매혹적인 춤과 그 왕의 관능적 성질을 이용하여, 그 딸로 하여금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달라고 요청하게 하여 그것을 받았다.

4) 그 때 고민하고 당황해했던 헤롯은 후에 예수님이 진정 부활한 세례 요한인 줄 알고 두려워하였다.

5) 이리하여 신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 예수님은 전에 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고 말했었다(11:1-11). 요한에 대한 마지막 언급들 중 하나를 보면, 우리는 이 담대한 선지자가 또한 능력있는 기도의 전사였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세주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을 본다 :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1:1).

 

7번째 설교 :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6:26-59).

1) 주님이 전에 음식을 먹였던 무리들 중에 일부가 지금 주님 주위에 모여 있다.

2) 주님은 그들의 세속적인 동기를 알고 그들에게 육신을 위한 떡을 구하지 말고 생명의 떡을 구하라고 충구한다(참조, 2:23-25).

3) 주님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인쳤으며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믿기 원한다고 말한다.

4) 주님은 자기가 곧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인도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나아오며 또한 그들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5) 마리아와 요셉을 아는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왔다는 주님의 주장을 비웃는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주님은 자신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한다.

6) 주님을 마지막 날에 모든 성도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릴 것을 약속한다.

7) 주님은 자기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그의 살을 주겠다고 말한다.

8) 주님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로써 결론을 내린다.

 

2. 주님은 따르던 제자들은 이 설교를 듣고 당황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며,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6:6-66).

3.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그들도 떠나려느냐고 물어본다. 이 때 베드로는 즉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6:67-69).

1)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2)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3)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8번째 설교 : 더러움의 근원에 대한 설교 (15:1-20;7:1-23).

1)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그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식사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계명을 범하였다고 예수님을 비난한다.

2)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와 같이(29:13),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 계명을 범하는 자들은 바로 그들 자신임을 지적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음과 같다.

(1)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그 마음을 멀리 떠나 있다.

(2) 그들 자신의 유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

(3) 부끄러운 방법으로 그들의 부모를 잘못 섬긴다.

3) 주님은 더러움의 참 근원은 안에서 나오는 것, 즉 더러운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마음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주님은 몇 개의 실례들을 제시한다.

(1) 살인과 간음과 음란.

(2)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

(3) 탐심과 악독과 속임.

(4) 음탕과 흘기는 눈과 교만과 광패.

 

9번째 설교 : 마귀와 그의 자녀들에 관한 설교(8:33-59).

1) 예수님은 자기들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그들의 교만한 주장을 논박한다.

(1) 그들은 아브라함이 행한 것과 같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8:37-43).

(2) 그들은 사탄이 행한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8:44).

2) 그들은 또 다시 주님을 귀신 들렸다고 비난한다(8:48,52). 또한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8:41) 라는 그들의 냉소적인 암시를 주목해보자.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둘러싼 특이한 상황에 의심을 품으며 헐뜯는 말을 하는 여러 경우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이 이 후에 한 소경을 고쳤을 때, 바리새인들은 고침을 받은 자에게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예수니] 죄인인 줄 아노라"(9:24)라고 말하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3)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자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8:56-58).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이 일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언제 일어났는가/(참조, 22장과 히11:17-19).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8:57).

여기에 나타난 그들의 말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감당한 엄청난 압력과 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서 33세에 불과한 주님이 50세로 오해를 받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

주님이 "내가 있었느니라"(I was) 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있느니라"(I am) 라고 말한 것을 주목해보라(참조, 3:14).

4. 유대인들은 주님을 돌로 치려 하였으나 주님은 이를 피한다(8:59).

 

10. 24번째 이적 :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심(9:7).

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소경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다(9:1-3).

2) 주님은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고,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한다(9:6,7).

3) 그 사람은 명령받은 대로 하여 시력을 회복한다.

4) 이제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대화가 오고 간다.

(1) 소경과 그의 이웃 사람들과의 대화(9:8-12).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라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예수님에 관해 증거한다.

(2) 소경과 바리새인들의 대화(9:13-17).

바리새인들은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몹시 격노한다.

그들은 그 소경의 증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3) 바리새인들과 그 사람의 부모들과의 대화(9:18-23).

부모들은 문제의 그 사람이 진짜 소경으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파문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4) 소경과 바리새인들의 대화(9:24-34).

소경은 그의 증거를 되풀이 한다.

바리새인들은 그를 조롱하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고발한다.

(5) 소경과 예수님의 대화(9:35-38).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지 그에게 질문한다.

그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믿고 싶다고 말하며 더 알게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그의 신성을 선언하고 그 소경의 경배를 받는다.

(6)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대화(9:39-41).

주님은 자기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무서운 영적 소경이라고 경고한다.

5) 놀라운 이적(9).

(1) 이 이적으로 2가지 잘못된 생각들이 시정된다.

개인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참조, 1,2).

모든 고난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생각(참조, 3; 11:4,14,15). 여기서 제자들은 욥의 세 "친구들"이 범했고 또한 몇몇 현대의 신앙요법가들이 범하는 서글픈 오류, 즉 모든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가정을 받아들였다.

(2) 이 이적으로 3가지 사실들이 확인된다.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심각한 소경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참조, 16,24,39-41).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다는 사실(참조, 18-23; 12:42,43).

예수님이 자기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사실(참조, 35-38).

 

11. 10번째 설교 : 선한 목자에 관한 설교(10:1-18).

1)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안다(10:3,14).

2)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인도한다(10:3,4,27).

3) 선한 목자는 그의 양과 더불어 말한다(10:3,4,27).

4)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구원한다(10:9,28).

5)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풍성하게 먹인다(10:10).

6)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위해 죽는다(10:11,15).

7)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모은다(10:16).

 

12. 10번째 설교의 요약. 요한복음 10장을 요약한 것들 중 가장 훌륭한 것 가운데 하나는 호머 켄트(Homer Kent) 박사가 요약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선한 목자는 그의 양을 불러 모은다(10:1-6).

팔레스틴의 양 우리는 보통 마을 근처에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다. 많은 목자들이 밤에는 양을 우리에 넣어 두고, 아침이 되면 각각 그 자신의 양을 모아 풀밭으로 이끌고 나간다. 목자들이 양 떼를 불러 모으는 아침의 행동이 바로 이 강화 첫 부분의 주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목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양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보호하는 종교적 체제, 즉 유대교를 나타낸다. 이것은 1016절 말씀으로부터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자들이 다름아닌 유대교의 지도자들 즉 그 소경이 유대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방금 목격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주님은 유대교가 메시야 및 그를 따르는 자들과 어떻게 관련되고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었다. 그 우리는 천국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도둑이나 강도들이 없기 때문이다(6:20). 그것은 구원이나 교회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이 우리 속에서 이미 그의 양을 찾아서 그들을 거기로부터 인도해냈기 때문이다(10:3).

(1) 그는 정당한 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10:1,2).

양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지닌 목자는 남몰래 그 우리로 들어가거나 담을 넘어갈 필요가 없다. 그는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로 올 수 있었다. 구약의 예언들이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주님이었다. 주님은 이사야가 예언한대로(7:14)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다. 주님은 그의 법적 부친인 요셉으로부터 다윗의 위라는 칭호를 받았다(1:1-16).

(2)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어 준다(10:3a).

문지기는 목자가 오기까지 우리를 책임지고 있다가 그에게 양을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이 문지기는 위대한 목자인 주님을 그 민족에게 공식적으로 소개한 사람인 세례 요한인 것 같다(1:26-34).

(3) 그는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른다(10:36).

팔레스틴의 양 우리에는 많은 양 떼들이 들어 있으나 목자들이 각각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 서로 나누어졌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을 때, 모든 유대인들이 그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비록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종교체제를 충실히 따르기는 하지만,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실되고 신령한 양떼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의 진실된 양떼들이었다. 진실로 이스라엘의 구속을 기다리고(: 사가랴, 엘리사벳, 시므온, 안나, 마리아, 요셉) 오신 구세주를 기쁨으로 영접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본문의 그 소경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참 목자가 왔을 때, 그는 그의 음성을 알아보았다.

(4) 그는 우리에서 그의 양을 인도하여 낸다(10:3c-6).

예수님이 자신을 그 백성들에게 나타냈을 때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거절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주님을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도 핍박했다. 이것은 주님이 자기와 그 소경과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좇았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출교당했다. 유대교의 우리는 그 본래의 기능을 완수해 왔다. 그것은 그 민족을 모세 율법의 보호 아래 두고 우상을 섬기는 세상의 민족들로부터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고 있었다(참조, 3:24,25).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그 소경을 인도해 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사람을 출교시켰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권자인 하나님은 종종 그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인간의 행위를 사용하신다. 메시야는 옛 예언들의 성취로서 그의 양떼를 다시 우리 안으로 이끌어들인다는 언급이 없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예수님의 청중은 주로 불경건한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9:40), 그들은 이 비유에 내포된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다(10:6).

2) 선한 목자는 그의 양떼를 풍성하게 먹인다(10:7-10).

예수님은 또 다른 교훈을 주는 두번째 장면을 계속 묘사했다. 그 장면은 한낮에 마을 근처의 우리로부터 이끌려 나온 양들이 꼴과 물을 얻기 위하여 풀이 많은 언덕과 시냇물로 인도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 그가 예비한 것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을 ""(door)이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문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문으로 들어간 선한 목자로 불리웠기 때문에 양 우리의 문과는 이미 구별되었다(10:2). 오히려 우리는 양이 그늘과 물을 찾기 위하여 들어가며 거기서 꼴을 발견할 수 있는 무성한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그 문을 이해해야 한다.

(1) 그는 구원의 문이다(10:7-9a).

양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곳은 목자 근처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구원에 있어서도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를 주님과 구세주로 믿음으로 성도는 구원의 방주로 인도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셨고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채워줄 책임을 떠 맡으신다.

(2) 그는 풀밭으로 인도하는 문이다(10:9b).

목자들은 그들의 양떼들은 위해 풀밭을 찾을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처럼 건조한 땅에서는 항상 쉬운 작업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꼴을 공급하는 사람이며, 그들의 영적 성장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따름으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20:32;딤전 4:6;벧후 3:18). "들어가며 나오며"라는 말은 살아가며 자기의 일을 수행하는 개념을 묘사하기 위한 일반적인 성서 관용어이다(31:2;대하 1:10;1:21).

(3) 그는 풍성한 생명으로 통하는 문이다(10:10).

성도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생명은 영원하다. 그것은 단순히 육신적 생명의 연장만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알아온 생명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생명이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그는 그 생명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죄의 완전한 용서를 깨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해주어 그의 일상생활을 인도하는 성령을 받는 것, 이 모든 것들과 그 밖의 다른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풍성함을 더해준다.

3) 선한 목자는 그의 양떼를 보호한다(10:11-18).

그 장면은 이제 저녁으로 바뀐다. 흔히 팔레스틴 목자들은 특히 건기에는 목초지와 물을 찾아 양떼들을 마을에서 아주 먼 곳까지 몰고 나가기 때문에 그들은 밤중까지도 우리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면 그들은 밖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가장 위험하고 따라서 목자들의 보호를 가장 필요로하는 때였다.

(1) 그는 그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10:11-13).

많은 목자들이 그들의 양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거기서 그들은 들짐승들의 공격뿐만 아니라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강도들과도 싸워야 했다. 이 경우에 그들이 죽는다해도 그 죽음은 언제나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도 또한 그의 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나, 주님은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칠 것이다. 주님은 "그의 목숨"을 내어줄 것이다. 그의 양들은 가장 어려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53:6). 예수님은 여기서 이듬해 봄에 있을 그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다.

목자의 그러한 희생적 행위는 삯군의 행위와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데, 삯군의 유일하고 진정한 목적은 그의 개인적인 유익이었다. 삯군은 자기들에게 유익할 때는 양들을 지키지만 다른 사람의 재산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그들의 직업적 일에서 이익을 취하기는 하나 "양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2) 그는 그의 양을 안다(10:14,15).

이 선한 목자는 그의 양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한다. 그는 그들이 쉽게 길을 잃는다는 것과 그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양들이 흩어지지 않고 떼를 지어 함께 있도록 한다. 목자는 그의 양떼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 어떤 양도 길을 잃고 버려질 수는 없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17:12). 그가 자기 양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서로에 대해 아는 지식과 같이 완전하다.

(3) 그는 그의 양들을 모은다(10:16-18).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유대교의 "울타리(우리)" 에 속하지 않는 "다른 양들"을 모으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은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선한 목자가 세상 곳곳으로부터 모으려 하는 이방인들을 가르키는 것 같다. 그의 양들이 복음으로 부르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올 때 그들은 "한 목자"에 속하는 "한 양떼"들이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오순절 날에 신약교회가 설립된 이후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한 한 양떼의 일원이 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성원으로 하는 하나의 지체라고 말했다(3:6;3:11). (어둠 속의 빛) (Light in the Darkness), pp. 138-142).

 

11번째 설교 : 겸손과 지옥에 관한 설교(18:1-20;9:33-10:1;9:46-50).

1) 예수님이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한다.

(1) 주님은 그들 가운데 한 아이를 세운다.

(2) 주님은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그 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3) 주님은 자기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자기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8:5).

(4) 주님은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어린 아이의 믿음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깊은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낫다고 경고한다(18:6).

(5) 주님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하여 일한다고 말한다(18:10).

2) 예수님이 종파주의에 관한 질문에 대답한다(9:38-41).

(1)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내어 쫓는 사람이 원래의 열 두 제자들 중 하나가 아니라고 해서 그를 비난했다.

(2) 예수님은 그 사람이 자기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증거하는 자라고 말하면서 요한의 행위를 책망한다(참조, 11:23;9:50;9:40).

(3)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는 그가 이방인이라도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3) 예수님은 지옥에 관하여 가르친다(18:8,9;9:43-48).

(1) 만일 당신의 손과 발 때문에 당신이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당신의 손과 발을 찍어버리라.

(2) 만일 당신의 눈 때문에 당신이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당신의 눈을 빼어버리라.

(3) 온전한 몸으로 그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에 가는 것보다 손발을 끊어 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4) 예수님은 그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말한다.

(1) 주님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왔다(18:11).

(2) 목자가 그의 우리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자를 찾는다(18:12,13).

(3) 그는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그 한 마리 양을 더 기뻐한다.

5) 예수님은 화해에 관하여 말한다.

(1) 가능한 한, 죄지은 형제에게 개인적으로 권고하도록 노력하라(18:15-17).

(2) 만일 그가 듣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을 더 데려가서 다시 권고하라.

(3) 만일 그가 이것도 듣지 않으면 그를 회중 앞으로 데려가라.

(4) 만일 그가 이것도 듣지 않으면 그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취급하라.

(5) 만일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하여 합심하여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6) 만일 두 사람이 이 문제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이 그들 중에 함께 거한다.

 

3.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용서에 관한 질문을 한다(18:21-25).

1) 질문 : "주여 형젠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8:21).

2) 대답 :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18:22). 고대 유대 전통에는 아모스서 13절과 26절에 근거하여 세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나타난다. 이와 대조되는 것을 보려면 창세기 424절을 참조하라.

 

12번째 설교 : 70제자를 파송하며 행한 설교(11:20-24;10:1-16).

1) 주님은 그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군이 적으니 이 문제에 관하여 그들이 기도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2) 주님은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말한다.

(1) 그들은 동리에 들어가서 성도의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

(2) 그들은 병자를 고쳐주어야 한다.

(3)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한다.

(4) 그들은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동리에서는 발에 묻는 먼지까지 떨어 버려야 한다.

3) 주님은 다음의 세 도시에 저주를 선포한다.

(1) 고라신과 벳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이 두 갈릴리 도시에서 행해진 권능을 목격했었더라면, 그들은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로와 시돈이 심판 날에 이들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2)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하늘에까지 높아졌으나, 그 불신 때문에 음부에까지 낮아질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모습들 중에 하나는 가버나움의 폐허이다.

저 사악한 구약의 도시인 소돔이 심판 날에 가버나움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4) 주님은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들을 저버리는 사람은 자기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5. 주님은 70인을 둘씩 보낸 후에 나가서 말씀을 전한다(11:28-30).

1)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자들이 자기에게 와서 영혼의 안식을 얻으라고 초대한다.

2) 주님은 그들이 자기의 멍에를 지고 자기에게 배우기를 바란다.

3)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다.

4)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1:28-30). 이 아름다운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유일한 자기 묘사를 보게 된다(참조, 2:5-8).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거부당한 왕은 이제 거부하는 민족으로부터 돌아서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봉사를 전파한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들일 것이다.

: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혼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12:18).

이 새로운 사역을 주님께서 이전에 열 두 사도들에게 주었던 다음 교훈과 비교해 보라.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6).

 

6. 주님은 기뻐하며 돌아오는 70인을 맞이한다(10:17-20).

1) 그들의 증거 :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2) 주님의 권고 :

(1)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참조, 14:12-15).

(2)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참조, 16:18).

(3)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13번째 설교 : 유대인 지도자들의 12가지 죄를 지적함(23:1-36;12:38-40;20:45-47).

1) 그들은 교만으로 옷입고 회당의 성좌와 잔치의 상석에 앉았다.

2)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

3) 그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다.

4) 그들은 헛된 유전으로 사람들을 입박했다.

5)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아 버렸다.

6)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방법으로 교인들을 가르쳤다.

7) 그들은 거짓된 혀로 그들의 약속의 서약을 했다.

8) 그들은 의와 인과 신과 같은 것들을 무시했다.

9) 그들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켰다.

10) 그들은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찼다.

11) 그들은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의 무덤에 경배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23:35).

후자의 기록은 역대하 2420-22절에 나타나 있다. 성서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 4장에 아벨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고 역대하는 히브리 성서의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실제로 "성서에 기록된 최초의 살인으로부터 마지막 살인까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2) 그들도 역시 후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칠 것이다.

 

22.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을 보고 운다(23:37-39;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23:37-39).

특히 여기에 나타난 '너희 집'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 보자. 이것은 요한복음 216절과 마태복음 2113절의 "내집"이라는 말씀과 대조된다. 바로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은 교회시대 동안 버림을 당한다(참조, 21:33-46). 2329절의 예수님 말씀은 언젠가 영광스럽게 성취될 것이다(참조, 118:26;12:10).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가장 신랄한 고발을 포함하고 있는 이 장(23)은예루살렘도성을 보고 예수님이 우는 것으로 끝맺는다는 것을 주목하자.

 

23. 주님은 한 가난한 과부가 그녀의 모든 소유를 성전 연보궤에 넣는 것을 유심히 보신다(12:41-44;21:1-4).

 

14번째 설교 : 다가올 환란에 관한 설교(24:1-42;10:17-23;25:1-46 ; 13:1-37;21:5-36;12:11,12)

1) 예루살렘이 파괴됨(24:1,2;21:20-24).

(1) 예루살렘은 원수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할 것이다(참조, 19:43,44).

(2)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3) 그 백성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으로 사로잡혀 갈 것이다.

(4)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다. : 주님은 구절에서 예루살렘이 두 차례에 걸쳐 파괴당할 것임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첫번째 파괴는 역사적인 것으로 디도(Titus)가 기원후 70년에 그 도성을 공격했을 때 일어났다. 주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말했다. 이 예언은 놀랍게도 기원후 7098일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 날 로마 장군 디도는 에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도시를 점령했다. 유대인들이 아름다운 성전 대리석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회반죽 대신에 황금을 사용했다는 거짓 소문이 로마 군인들 사이에 퍼졌다. 따라서 로마 군인들은 문자 그대로 모든 돌들을 들추어 보았으나 그 황금을 찾지는 못하였다.

두번째 파괴는 장래 환란기의 언젠가에 일어날 것이다.

2) 33번째 예언 : 환란에 관한 예언(24:1-42;10:17-23;25:1-46 ; 13:1-37;21:5-36;12:11,12).

3) 대환란 : 전반부(24:3-14;10:17-23;13:4-13;21:7-19;12:11,12)

(1) 거짓 선지자들과 자칭 그리스도들이 일어날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할 것이다.

(2) 난리와 난리 소문이 들릴 것이다.

(3) 기근과 질병과 지진과 하늘로부터의 놀라운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4) 성도들이 그들의 가족들에 의하여 환란을 당하며 투옥되고 미움을 받으며 배척받을 것이다.

(5) 불법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전체 교회 시대를 통해 보다 소규모로 일어났으며, 틀림없이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4) 대환란 : 후반부(24:15-31,36-42;13:14-27,32-37;21:25-28. 34-36).

(1) 멸망의 가증한 것이(적그리스도의 형상) 성전의 거룩한 곳에서 정체를 들어낼 것이다.

(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환란과 박해가 시작될 것이다.

(3) 해와 달이 어두워질 것이다.

(4)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5) 사람들은 전에 결코 겪지 못했던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6)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7)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15번째 설교 : 그의 아버지 집에 관한 설교(14:1-31).

1) 주님이 천국에 관하여 말한다.

(1) 그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2) 주님은 성도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거기에 간다.

(3) 39번째 예언 : 그의 재림에 관한 예언(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라는 구절을 주목해 보자. 이것은 4복음서에서 유일하게 휴거(rapture)를 기록한 것이며 성서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이 땅에서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최초의 기록이다.

2) 주님이 빌립과 도마에게 질문을 받는다.

(1) 도마 :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2) 예수님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3) 빌립 :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4) 예수님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3) 주님이 성령에 관하여 말한다(14:16-21).

(1) 성령이 와서 성도들과 함께 영원토록 거할 것이다.

(2) 성령이 와서 그들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칠 것이다.

4) 주님이 유다(가룟 유다가 아님)에게 질문을 받는다(14:22,23).

(1) 유다 :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하시나이까"

(2) 예수님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5) 주님이 평안에 관해 말한다(14:26,27).

(1) 주님은 그의 평안을 성도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2) 이 평안으로 그들은 마음에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6) 주님은 다락방을 떠나 감람산으로 가자고 말씀하신다. 마태는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26:30)라고 기록하고 있다. "할렐루야 시편"이라 불리는 6개의 시편들이 있는데, 시편 113, 114, 115, 116, 117, 118편이 그것이다. 이 모든 시편들은 유월절 전날 밤에 불리우던 것들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찬미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편들이다. 위의 시편들에 나오는 몇 몇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116: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16:3).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118:22-24).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118:26).

 

16번째 설교 :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설교(15:1-16:33).

1) 주님은 아버지의 포도원에 있는 포도나무요 모든 성도들은 그의 가지들이다.

(1) 가지가 과실을 맺으려면

아버지에 의해 깨끗케 되어야 한다.

아들 안에 거해야 한다.

'과실'(Fruit), '더 많은 과실'(more Fruit), '아주 많은 과실'(much Fruit)이라는 점층법적 표현을 주목해 보자(15:1-5). 이 과실은 '개종자'(1:13)나 그리스도인의 '인격'(5:22,23) 또는 그리스도인의 '행실'(1:11;6:21,22)을 의미할 수도 있다.

(2) 만일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것은 잘리워 밖에 버려진다(15:6). 포도나무에서 잘린 이러한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들에 대한 문제가 있다. 즉 그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15:2,6). 이에 대해 3가지 이론들이 제시된다.

첫째, 잘리운 가지들은 구원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낸다.

둘째, 그 가지들은 사도행전 5:1-11 ; 고린도 전서 11:27-34 ; 요한 15:16절에 묘사된 것과 같은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한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낸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린도전서 3:11-15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공력은 불에 살라질 것이다.

세째, 그 가지들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형식적 관계마저 끊어진, 단지 말뿐인 그리스도인들(즉 종교적인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실례는 이미 유다에게서 나타났다(참조, 13:27-30;17:12).

2) 주님은 세상으로부터 부당하게 미움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도 또한 미움을 받을 것이다(15:18-25).

(1)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당할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인하여 죽음을 당할 것이다.

3)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야만 성령이 오실 것이다(15:26 ; 16:7-15).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16:7). 이 사건 전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여기서 예수님 이 사용하신 것과 같은 "유익한"(expedient)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참조, 11:50;18:14).

(1)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영화롭게 할 것이다.

(2)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깨닫게 할 것이다.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것은 주님이 그의 아버지께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지배자(사탄)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3) 성령은 신자들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

4) 주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4가지 약속을 말한다(16:20-23).

(1) 그들이 현재 당하는 근심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그것은 해산하는 여인의 근심이 아기를 낳으면 기쁨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 그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필요를 아버지께 자유롭게 구할 수 있다.

(3) 그들은 환란 중에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4) 그들은 세상을 이길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그의 사역의 적절한 요약이 되는 요한복음 1628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자.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성육신] 세상에 왔고[현현] 다시 세상을 떠나[십자가에 달리심] 아버지께로 가노라[부활과 승천]"

 

(6) 장막절 기간중에 성령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7:10-39).

(8) 사탄과 그의 자녀들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8:33-59).

(10) 선한 목자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10:1-18).

 

(17)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15,16).

 

이사야 61장에 대한 첫 설교를 한 후에 동리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하였다.

두번째 설교를 한 후에 그는 주님들로부터 완전히 배척을 당하였다(13:53-58;6:1-6).

26) 갈릴리 바다 : 내해라고 하는 이 호수는 길이가 37마일, 폭이 7.5마일, 둘레가 32마일에 이른다. 해발보다 수면이 700피트 낮으며 최고 수심은 200피트 이다.

(1) 이 호수 옆에서 예수는 5,000명을 먹이셨다(6:1-14).

(2) 예수가 8복에 관한 설교를 한 산이 바로 이 호수 근방이었다(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