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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19개의 기도

blessing u 2024. 1. 31. 19:21

구세주의 19개의 기도

 

구세주의 기도들

1. 세례받을때 기도하심(3:21).

2. 1차 갈릴리 전도여행 전에 기도하심(1:35;4:42).

3. 문둥병자를 고치고 기도하심(5:16).

4. 그의 열 두 제자들을 택하기 전에 기도하심(6:12).

5. 5,000명을 먹인 후에 기도하심(14:23;6:46;6:15).

6.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기도하심(9:18).

7. 그의 변용 때 기도하심(9:28,29).

8. 70인이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들을 때 기도하심(11:25-27;10:21,22).

9. 마리아와 마르다를 방문한 후에 기도하심(11:1).

10.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은 후에 기도하심(19:13-15;10:13-16;18:15-17).

11.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기도하심(11:41,42).

12. 어떤 헬라인들이 그를 만나고자 할 때 기도하심(12:27,28).

13. 다락방을 떠난 후 기도하심(17:1-26).

14.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첫번째 기도) (26:39;14:35,36;22:41,42).

15.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두번째 기도) (26:42;14:39;22:44).

16.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세번째 기도) (26:44).

17.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심(첫번째 기도) (23:34).

18.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심(두번째 기도)(27:46,47;15:34,35).

19.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심(세번째 기도)(23:46).

 

구세주의 기도에 대한 요약

1. 주님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1) 아버지께서 그의 갈릴리 전도여행을 도와주시도록 기도했다(2).

(2) 아버지께서 열 두 제자를 택하는데 있어서 그를 인도하시도록 기도했다(4).

(3) 아버지께서 아들의 신성을 베드로에게 계시해 주도록 기도했다(6).

(4) 70인들에게 신령한 진리를 계시해주신 아버지께 감사했다(8).

(5) 아버지께서 항상 그의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했다(11).

(6)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했다(12).

(7) 아버지께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시도록 기도했다(13).

(8) 아버지께서 모든 신자들을 보호하고 거룩하게 하며 연합시키고 완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에게 모으시도록 기도했다(13).

(9) 가능하면 그의 고통의 시간이 그를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14,15,16).

(10) 그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14,15,16).

(11) 그의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17).

(12) 그가 자기의 고난을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18).

(13) 아버지께서 그의 영혼을 받아주시도록 기도했다(19).

2. 주님이 기도해 준 사람들.

(1) 어린 아이들(10).

(2) 그의 원수들(17).

(3) 자기 자신(12,13,14,15,16,18,19).

(4) 모든 신자들(13).

(5) 70제자들(8).

3. 주님이 기도할 때.

(1) 밤에(4).

(2) 한 밤중이 조금 지나(13,14,15,16).

(3) 새벽에(2).

(4) 아침 일찌기(17).

(5) 저녁 늦게(18,19).

4. 주님이 기도한 방법.

(1)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11,13).

(2) 무릎을 꿇고(14,15).

(3) 얼굴을 땅에 대고(14,15).

(4) 십자가에 달려서(17,18,19).

 

 

첫번째 기도 : 그가 세례받을 때 기도를 하였다(3:21).

3.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고 하나님이 그를 기뻐한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가 모두 활동하는 것을 본다. 이 때 요한이 한 말을 주목해보자.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1:32,33;참조, 11:2,42:1).

 

2번째 기도 : 1차 갈릴리 전도여행의 날에 행하심(1:35;4:42).

1) 이 기도는 한적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2) 이것은 주님이 제 1차 갈릴리 전도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3번째 기도 :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에 기도하심(5:16). 비록 주님은 유명해졌지만, 그의 참 임무는 사람들의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고치는 것임을 깨닫고 한 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했다.

 

4번째 기도 : 그의 12제자들을 택하기 전에 기도하심(6:12).

6.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주님은 열두 제자들을 택하신다.

1) 시몬 베드로

2) 안드레

3) 세베대이 아들 야고보

4) 요한

5) 빌립

6) 바돌로매

7) 도마

8) 마태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10) 유다(다대오)

11) 가룟 유다

이들의 명단을 살펴보려면 마태복음 10:2-4 ; 마가복음 3:13-19 ; 누가복음 6:13-16절을 살펴보라.

 

5번째 기도 : 5000명을 먹이신 후에 바다 근처의 산위에서 기도하심(13:23;6:46;6:15).

1) 예수님은 기적으로 식사를 해결한 5,000명의 사람들이 매우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억지로 왕위에 앉히려고 한다는 것을 아셨다.

2) 이에 그는 제자들을 명하여 떠나가게 하시고 기도하러 산에 오르신다.

 

6번째 기도 :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기도하심(9:18).

2.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이에 제자들이 대답한다.

1)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세례 요한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2) 다른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라고 생각했다.

3) 어떤 사람들은 그를 예레미야라고 생각했다.

 

3.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은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한다(16:16).

1) 주는 메시야이다.

2)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4.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7번째 기도 : 변화산 위에서의 기도(9:28,29).

2. 주님이 변화된다(17:2;9:3;9:29).

1)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헤르몬산 꼭대기로 올라가나 곧 잠이 든다.

2) 예수님의 얼굴이 갑자기 해와 같이 빛나고 그의 옷은 눈처럼 희게 된다.

3) 주님은 하늘의 두 방문객들, 즉 모세와 엘리야를 영접하며 그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예루살렘에서의 승천에 관하여 말한다.

4) 그 세 사람들은 이제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하나님은 이 때 그들을 덮고 있는 빛난 구름 속에서 말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17:5).

6) 그 세 제자들은 두려워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나 예수님은 그들을 안심시킨다.

7) 변형에 대한 고찰.

(1) 성서는 이것이 밤중에 일어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그 세 제자들이 깊은 잠에서 방금 깨어났기 때문이다(참조, 9:32).

(2) 예수님은 갑자기 내려 비추던 그 빛은 주님 안에서 나온 빛이며 어떤 거대한 우주로부터 나온 빛은 아니다. 주님의 얼굴이 먼저 변화되고 다음에 그의 옷이 변화되었다. 사울은 후에 요한이 본것 같은(1) 이처럼 빛난는 구세주를 보게 될 것이다(9).사탄은그리스도의 내면적인 광채를 모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참조, 고후 11:14).

(3) "변형되사"(transfigured)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모르푸'(metamorphoo)이다. 이 말에서 '변태'(metamorphosis)라는 말이 나왔다. 그것은 고치 속에 있던 애벌레가 나비로 되어 나오는 것을 연상케 한다.

(4) 그리스도의 변형은 그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성'을 나타낸다. 변형은 인성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휴거 때 이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진무구의 빛으로 옷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죄를 지음으로 사라져버렸다.

(5)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이 나타난다. 이 두 사람은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으며,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받았다(시내산 또는 호렙 산). (참조, 33:17-23;왕상 19:9-13). 그 변용은 모세의 두 가지 요청에 응답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참조, 33:18).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참조, 3:23-25). 어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은 대환란기 동안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서 다시 한 번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참조, 4:5;11:3-14).

8) 베드로는 여기서 경솔하게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한다. 이 때 장막절(초막절)이 예루살렘에서 지켜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속받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장래의 천년왕국의 전형이 될 수도 있었다(참조, 23:34-44). 그러나 이것이(천년 왕국)있기 전에 '또 다른' 축제(즉 유월절)가 있게 될 것이다(참조, 23:4-8;26-27). "우리의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9) 베드로는 이 위대한 사건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후에 이에 대하여 기록한다(참조, 벧후 1:16-18).

10) 예수님은 그가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한다(9:31). 여기에 사용된 말은 실제로는 "탈출"(exodus)이며, 훗날 베드로는 그에게 닥아오는 죽음을 묘사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참조, 벧후 1:13,14).

 

8번째 기도 : 돌아온 70인의 보고를 듣고 드린 기도(11:25-27;10:21,22).

1) 주님은 신령한 진리를 물질주의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그의 아버지를 찬양한다.

2) 주님은 이 모든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8. 주님은 일흔 제자들에게 그들의 귀중한 특권을 상기시킨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들은 그 제자들이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그들이 듣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10:23,24). (참조, 벧전 1:10-13;11:30-40).

 

9번째 기도 :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바로 전에 한 기도(11:1).

3. 주님은 그가 예로 보여준 기도를 다시 되풀이 하고(참조, 6:9-13), 기도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11:1-13).

주님은 세상의 어떤 아버지도 그의 아들에게 떡이나 생선 대신에 돌이나 뱀을 주지는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10번째 기도 : 어린 아이들에게 손을 대고 드린 기도(18:15-17;19:13-15;10:13-16).

1)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도받기 위하여 많은 어린아이들을 그에게 데리고 나온다.

2) 그의 제자들은 주님의 시간을 빼앗는 이러한 행위를 저지하려 한다.

3)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책망하는 어린아이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1)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2)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3)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11번째 기도 :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드린 기도(11:41,42).

(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2)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8) 그리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외친다.

9) 예수님의 대적들은 이 이적이 이루어진 후에 만일 필요하다면 주님과 나사로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공식적인 계획을 세운다.

(1) 바리새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그들을 저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2)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가 죽는 것이 이스라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기록상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말한 마지막 예언이 된다. 그 내용을 주목해 보자.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11:51,52).

위클리프 성서 주석(Wycliffe Bible Commentary)은 다음과 같은 점을 주목한다.

"그 말씀들은, 말하자면, 그의 입술에 주입된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발람(참조, 22-24)과같은자가있어 예수님을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예언으로부터 그리스도가 구속적이고 대속적인 의미에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어야 하고 또한 장기적인 의미에서 흩어진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모일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다.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부지중에 제시했다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 일이었는가!"(p. 331).

또한 이 예언을 말하도록 유도한 대제사장의 두려움을 주목해 보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고아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11:48).

역사의 신비한 아이러니는 물론 그 두 가지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고' 로마인들이 실제로 '왔다' 이 이적에 대한 주석들을 살펴보자.

1) 이것은 일반적으로 주님의 모든 이적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이것은 성도의 죽음이 자는 것으로 묘사된 최초의 경우이다(비교, 11:11절과 마 9:24;27:52;7:60;고전 11:30;고전15:50,51;살전 4:14).

3) 우리는 주님이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영혼이 죽은 후에 3일 동안 육체 주위를 배회하며 그때까지는 부활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렸다.

4)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가 이 이야기의 여 주인공이다(참조, 10:38-42에는 반대로 나타나 있다).

(1) 마리아는 집안에 있었던 반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갔다.

(2) 여기 나타난 마르다의 위대한 증거는 또 다른 경우에 시몬 베드로가 말한 신앙고백과 같이 중요하다(비교, 11:27과 마 16:16).

5)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울었던 4가지 경우들 중의 첫번째 경우이다(참조, 5:7;17:41;23:37-39).

(1) 주님은 그의 참된 인성 때문에 울었다(참조, 4:14-16).

(2) 주님은 그의 주위에 있던 사악한 사람들 때문에 울었다(참조, 11:37,46).

6) 구세주는 그의 위대한 이적을 수행하는데 인간의 도움을 받았다.

(1) 주님은 누군가에게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했다(참조, 11:39).

(2) 주님은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풀어 놓으라고 명령했다(참조, 11:44).

 

12번째 기도 : 헬라인 몇이 그를 만나려고 할 때 드린 기도(12:27,28).

1) 아들의 기도

(1)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2)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가 왔나이다"

(3)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2) 아버지의 응답: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13번째 기도 : 다락방을 떠난 후에 드린 기도(17:1-26).

1) 주님은 과거에 자신이 행한 9가지 일에 대해 회상한다.

(1) 그는 모든 택한 자들에게 영생을 주었다(2).

(2) 그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4).

(3) 그는 그의 사명을 완수했다(4).

(4)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나타냈다(6, 26).

(5)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했다(8, 14).

(6) 그는 택한 자들을 보전하고 지켰다(12; 참조, 18:9).

(7) 그는 택한 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냈다(18).

(8) 그는 그들을 위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구별하였다(19).

(9) 그는 그의 영광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22).

2) 주님은 미래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다음의 9가지 일을 행하여 주실 것을 간구한다.

(1)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1,5).

(2) 아버지는 택한 백성을 보전할 것이다(11).

(3) 아버지는 택한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11).

(4) 아버지는 그들 안에 기쁨을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13).

(5) 아버지는 그들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할 것이다(15).

(6) 아버지는 그들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17).

(7) 아버지는 세상에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23).

(8) 아버지는 천국에서 그들을 아들과 함께 있게 할 것이다(24).

(9) 아버지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 것이다(26).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17:1-5), 제자들을 위해(17:6-19), 그리고 교회를 위해(17:20-26) 기도하고 있다.

: 이 기도는 얼마나 거룩한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사역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제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집에 있고 성령은 아들이 명령하고 아버지가 승인한 이러한 "구속의 권고"를 분주하게 수행하고 있다.

 

14번째 기도 : 주님의 첫번째 겟세마네 동산 기도(26:39;14:35,36;22:41,42).

1) 주님의 자세 : 땅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거기에 파묻었다.

2) 주님의 기도 :

(1)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2)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13. 주님은 돌아와서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26:40,41;14:37,38).

1) "시몬아 자느냐"

2)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4)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15번째 기도 : 주님의 두번째 겟세마네 동산기도(26:42;22:44;14:39).

1) 주님의 자세 :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은 땀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2) 주님의 기도 :

(1)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2)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의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는 것과 사탄의 방자함을 비교해 보라. 이사야 1412-14절을 참조해 보라. 따라서 겟세마네는 갈보리를 위한 그의 준비과정이 된다. 골고다에서 주님은 그의 '육신'을 포기했으나, 여기 겟세마네에서는 그의 ''을 포기했다.

 

15. 주님은 하늘로부터 나타난 천사의 도움을 받는다(22:43).

16. 주님은 두번째로 그의 제자들이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26:43;14:40).

17. 많은 화가들과 작곡가들이 이 기도장면을 묘사해 왔으며, 일반적으로 그들의 묘사는 고요하고 평온한 광경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무릎을 꿇고 두 손은 깍지를 낀채 앞에 경건하게 놓여 있으며 눈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입술은 '고난의 잔'의 기도를 드리며 가볍게 떨고 있는 구세주 위에 하늘로부터 한 줄기빛이 내리비취고 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묘사는 전혀 성서적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고요한 겟세마네 동산을 가득 채우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에 자신의 느낌을 보여주는 주님 자신의 묘사를 살펴보자. 주님은 자기가 다음과 같은 상태에 있었다고 말한다.

1) "심히 놀라시며" -, 주님은 갑작스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14:33).

2) "슬퍼하사"-, 주님은 자기의 영혼을 엄습하고 의심과 심한 고통으로 가득 채우는 전혀 생소한 상황을 경험했다[이것은 무디 성서 연구원의 헬라어 교수인 고 케네스 우어스트(Knneth S. Wuest)가 제시한 주석이다].

3)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 주님은 슬픔에 완전히 압도되어 그것은 그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마귀는 구세주가 몇 시간 후에 십자가 위에서 그의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동산에서 주님을 죽이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주님은 이것을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대응하셨는 바 이것은 우리 히브리서 57절에서 보는 그대로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아버지는 그의 부르짖음을 듣고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도와주었다(참조, 22:43). 사람들은 주님이 그 동산에서 드린 세 번의 기도를 통해서 그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고 거기서 기도할 때마다 ""을 언급했다고 말한다. 그의 영혼이 그렇게 마시기를 두려워했던 이 잔이란 무엇이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이 겪는 고난의 잔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이러한 고난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난이난 슬픔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여기서 마시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육신적 죽음의 잔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시 주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그러므로 죽음이 그를 두렵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이 저주의 잔의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성경은 평범하게 겟세마네의 잔은 모든 인간성의 죄악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말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어둠 속을 더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그 날 밤에 인간 죄악의 심연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고, 그 역겨운 냄새를 맡고 피어오르는 독기를 보며 번민하고 있었다.

이 저주의 잔을 마시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구속할 수는 없었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주님은 쓰디쓴 인간 죄악의 마지막 잔까지 모두 비울 것이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2:9). (참조, 53;4:25;벧전 2:24;벧전3:18;고후 5:21).

 

16번째 기도 : 그의 세번째 겟세마네 동산 기도(26:44).

19. 주님은 세번째로 그의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26:45,46;14:41;22:45,46).

1) "이제는 자고 쉬라"

2)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3)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17번째 기도 : 십자가 위에서 드린 첫번째 기도(23:34).

8) 빌라도는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머리 위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27:37;15:26;23:38;19:19-22)는 명패를 쓴다.

1) 유대인들은 그 명패를 불쾌하게 여기고 빌라도에게 그것을 바꿔쓰도록 요구한다.

2) 빌라도는 그 청을 거절하며 "나의 쓸 것을 다 썼다"라고 말한다.

군병들은 제비를 뽑아 주님의 호지 아니한 속옷을 취한다(27:35;23:34;19:23,24).

일반적으로 공인된 시간표에 따르면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각은 4월의 어느 금요일 고난을 당하다가 오후 3시에 그의 영혼이 떠나갔다. 틀림없이 달리신 6시간은 이 모든 인류 역사중에서 오전 9시였다. 그 위에서 주님은 약 6시간동안성읍밖의외로운 언덕에서 보낸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9. 가상칠언 중 첫번째 말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 이 기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관계한 모든 사람들을 총괄적으로 용서해 달라고 비는 것 같았기 때문에, 이 기도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용서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2:8,9). 여기 사용된 "용서하다"(forgive)라는 말이 "허락하다"(allow) 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최소한 13번이나 그러한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자들도 있다. 만일 이 말이 그러한 의미라면 그리스도가 그 때 기동한 것은 "아버지여 저희를 허락하사 나를 못 박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기도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아들이 죄 많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살해됨을 보시고 진노하시는 것을 가라앉히기 위한 호소였을 것이다(참조, 3:15;9:14;1:34). 그러나 대부분의 성서 연구가들은 "용서하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죽인 사람들의 개인적인 죄에 이 무서운 대역죄(자신의 국왕을 살해하는 죄)를 더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에게 요청하는 것으로 주님의 기도를 해석하려 할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후에 그들의 설교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3:14,15,17).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 줄 아노라."

그리고 또한 고린도전서 28절을 살펴보자 :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주님은 "아버지여 나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구세주의 무죄성이 증명된다. 주님은 죄를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필요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말한 첫번째 말씀은 사람들이 변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2:1절과 딤전 1:13절을 비교해 보라).

 

10. 예수님은 많은 구경꾼들에 의하여 잔혹하게 조롱당한다(27:39-44;15:29-32;23:35-39).

1) 지나가는 사람들 :

(1)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는 자여 너를 구원하라"(흠정역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역주).

(2)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2) 유대 지도자들 :

(1)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2)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3) 군병들 :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4) 한 강도 :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18번째 기도 : 십자가 위에서 드린 두번째 기도(27:46).

1)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상한 어두움이 태양을 어둡게 했다.

2) 어떤 사람들은 이 기도를 듣고 주님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27:45-47).

 

19. 가상칠언 중 다섯번째 말씀 : "내가 목마르다"(19:28).

20. 구약 예언의 성취 제32: 그는 목마르게 될 것이다(참조, 22:15;19:28).

1) 어떤 사람이 해융에 신 포도주를 적셔 그것을 주님의 입에 짜 넣는다.

2) 구경꾼들은 엘리야가 와서 주님을 구원할 것인지 궁금해한다(27:48,49;15:36;19:28,29).

 

21. 예수님은 포도주를 받아 마시며 승리의 환성을 지른다(27:50;15:37;19:30).

22. 가상칠언 중 여섯번째 말씀 : "다 이루었다"(19:30).

: 예수님의 여섯번째 말씀은 헬라어 원어로는 한 마디 말이다. 그것은 '테텔레스타이'(tetelestai)인데, " 다 이루었다, 그러므로 영원히 완성되었다"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농부가 쓰는 말이다. 아주 훌륭하고 보기좋은 동물이 새로 태어났고 그것이 아무런 흠도 없고 결함도 없을 때, 농부는 자랑스럽고 기뻐하는 눈으로 그 생물을 바라보면서 "teltelestai!"라고 소리친다.

그것은 또한 예술가들이 쓰는 말이다. 화가나 조각가가 아름다운 풍경이나 대리석 흉상에 마지막 손질을 가한 후에 그는 몇 발자욱 뒤로 물러서서 그의 걸작을 감상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정할 것이나 개선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그는 조용히 "Tetelestai! Tetelestai"라고 말할 것이다.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다. 성서에서 "이루다"(finish) 라는 말이 사용된 곳이 세 군데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언급하는 창세기 21절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주님의 구속사역을 언급하는 여기 요한복음 1930절에서 사용되고 있다(참조, 4:34;5:36;17:4). 또한 그것은 주님의 사역의 완성을 언급하는 요한계시록 107절과 1617절에 사용되고 있다.

주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주님이 지금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 높이 달려서 돌아가실 때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소리쳤다. 이제 그는 하늘높이 들어 올려졌다. 할렐루야! 얼마나 놀라운 주님인가!"

 

19번째 기도 : 십자가 위에서 드린 세번째이자 마지막 기도(23:46).

25. 구약 예언의 성취 제33: 그는 자기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할 것이다(참조, 31:5;23:45). 예수님의 시편 315절의 하반부,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을 생략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구세주의 죽음에 뒤이어 많은 두려운 경이 들이 일어난다(27:51-56;15:38-41;23:45,47-49).

1) 주님이 고난당하다 죽는 것을 지켜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외친다.

2)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다.

3) 땅이 진동하고 무덤들이 열리며 죽은 성도들이 많이 일어난다.

4) 이 성도들은 예수가 부활한 후에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5) 그 백부장은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혀 다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외친다.

6) 십자가 밑에 모였던 무리들이 흩어지고 사람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7) 스코필드 성서(Scofield Bible)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찢어진 휘장은 대제사장이 구속의 날에 들어 갈 수 있었던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고 있었다(참조, 26:31;16:1-30). 그리스도의 육신을 상징하던 그 휘장이 찢어진 것은(10:20), '새로운 생명의 길'이 그리스도라는 제물외에는 어떤 다른 희생이나 제사장적 신분도 필요없이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참조, 9:1-8;10:19-22). 비록 그리스도께서 죽었을 때 무덤들이 열렸다하더라도(50,51) 그 시체들은 주님이 부활하기까지는 일어나지 못했다(53).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이며(1:18;1:5)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시다(고전 15:20). 이들 시체들이 그들의 무덤으로 도로 들어갔다는 기록은 나타나있지 않다. 곡식 단을 흔드는 것은(23:10-12)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상징을 살펴볼 때 그것은 복수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매장되었을 때 땅에 떨어진 것은 한 알의 '밀알'이었다(12:24). 그러나 부활을 인하여 그것이 산출한 것은 곡식단이었다. 여기서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성도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26. 4복음서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 수 있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하나님이 아니었던가? 사실 주님은 하나님이었다! 그러면 어떻게해서 하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창세기로 돌아가 그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의 출생과 그의 비극적인 범죄를 알게 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불순종은 사망을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사실 그 불순종은 인류의 조상에게 두 종류의 죽음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여기 나타난 두 가지 죽음은 모두 '분리'(Separation)라는 한 마디 말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란 말의 성서적 및 신학적 의미이다. 육체적 죽음이란 영혼이 인간의 육신을 떠나는 '분리'를 말하며, 영적 죽음이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둘째 사망이라고 불린다(참조, 20:6,14;21:8).

그러므로 아담에 의하여 전해진 이 두 저주스런 대적들, 즉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은 거의 4000년 동안 계속해서 인류를 괴롭히고 공포에 떨도록 해왔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모든 이름들 중에서)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렀다(고전 15:45).

왜 하나님은 이 칭호를 사용하였는가? 그것은 첫 아담이 이전에 행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주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즉 주님은 인류에게서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라는 그 두 사악한 대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셨다. 이 일을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완수했다. 거기서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적 죽음을 당했고, 그 두 가지 과업을 완수했을 때 육체적 죽음을 당했다. 영적 죽음은 즉시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았다. 바울은 후에 '어느 것도'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신자들을 끊을 수 없다 라고 우리에게 확신시킨다(8:35-39). 그러나 육체적 죽음은 어떻게 되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1-55절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또는 것이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