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대왕(Herod the Gerat, bc37-4)
1. 예수께서 태어나신 당시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 2:7-19과 누가복음 1:5에 나오는 헤롯 왕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는 33년 동안 유대인들을 다스리다가 마지막으로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예수께서 태어나던 그해에 죽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이다.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이방인이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되었는가? 순전히 그의 아버지와 로마 세력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이두매(에돔)의 실력자인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ter)는 유대 마지막 왕조인 하스몬 왕조의 혼란기를 틈타 로마의 권력을 힘없어 유대의 행정장관이 된다. 아버지의 권세 때문에 25살의 젊은 나이에 갈릴리의 총독이 된 헤롯(BC 47)은 틈을 엿보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공략하여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BC 37)
2.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성전을 제3성전 혹은 헤롯 성전이라 부를 만큼 오랜 서월에 결처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각종 건물들을 화려하게 건축하였다. 그리고 유대 하스몬 왕조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와 결혼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음모에 휘말려 사랑했던 마리암네와 두 아들을 죽이고 만다. 언제 로마의 지지가 끊어질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던 헤롯은 천혜의 요새인 거대한 마사다(Masada)를 건축하여 유사시에 피신하려고 했으나 사용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렇게 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한 것은 그의 처지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3. 헤롯은 열 명의 여자와 결혼하였다. 그의 첫 아내는 이두매 여인인 도리스(Doris)였다. 그러나 그는 도리스를 버리고 히르카누스(Hyr-canus)II세의 손녀인 마리암네(Mariamne)공주와 결혼하였다. 유대 왕실과의 결혼은 그의 왕권의 정통성을 좀 더 확고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헤롯은 마리암네를 사랑했으나 마리암네는 그를 싫어하였다. 마리암네에게서 아리스토볼루스(Aristobulus)와 알렉산더(Alezander)라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헤롯은 후에 마리암네와 두 아들을 죽이고 만다. 마리암네가 죽은 후 헤롯은 예루살렘의 제사장 시몬의 딸인 또 다른 마리암네와 결혼하여 헤롯 빌립을 얻었다. 이 빌립이 헤로다아의 첫 남편이 되지만 후에 헤롯 안디바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만다.(마 14:3;막 6:17) 그다음 헤롯은 사마리아 여자 말다게(Malthace)와 결혼하여 아켈라오(Archelaus)와 안디바(Antipas)를 낳았는데 이 두 아들이 헤롯 사후에 유대의 실권을 쥐게 된다. 헤롯의 또 다른 아내는 예루살렘 여인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이다. 이 여자는 빌립을 낳았는데 헤롯은 빌립에게 아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도록 했다.(눅3:1) 다른 다섯 명의 아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헤롯왕의 가계는 부록을 참고할 것)
4. 헤롯은 사마리아를 건축하여 세바스테(Sebaste)라고 일컬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그는 거의 70세였으며 죽을 병에 결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병적인 의심과 욕심은 베들레헴의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주게 만들었다. 그의 치세는 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를 싫어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