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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98년-BC159년. 헬라 시대. 북방 왕 시대 (헬라시대 후반부)

blessing u 2019. 11. 15. 07:37

BC198년-BC159년. 헬라 시대. 북방 왕 시대 (헬라시대 후반부)

1). 37대 양 손 대제사장

야손은 유대 히브리어를 버리고 헬라 이름으로 창 씨 개명하는 등 헬라 문명에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 사독의 후손이 수행해야 할 대제사장의 직무를 37대 야손 대제사장부터 혈통의 위임의 질서를 파괴하였다 이 시대부터 아론의 정통 후손들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빼앗겼다

2). 38대 메델라우스 대제사장

헬라 북방 시대에 베냐민 지파의 친 헬라 파인 메델라우스자가 대제사장 오르려고 이전 야손 대제사장보다 더 많은 뇌물을 북방 통치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에게 주어 38대 대제사장에 등극하고

통치자의 명령대로 성전과 온 산상에 통치자를 닮은 신상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여 성전을 더럽혔다

3). 39대 알키 무스 대제사장

레위 지파지만 대제사장의 정통 혈통이 아닌 친 헬라파 유대인으로 북방의 정책에 동조하였으며 마카비 혁명을 안정시키려고 마카비와 협상을 한다.

혁명을 일으킨 혁명의 정통파 유대인들 처벌하지 않기로 협약을 맺으나 곧 협약을 깨고 혁명에 가담했던 수많은 정통파 유대인들을 처형한다.

메델 라우스 대제사장도 처형한다. (대제사장이 대제사장을 처형하는 권력의 시대가 됐다)

혁명에 가담한 정통파 유대인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협약까지 하고서도 대제사장이란 자가 유대를 위하여 정당히 종교혁명을 한 많은 숫자 정통파 유대인들을 처형시키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39대 대제사장이 행하였다, 권력으로 변모한 대제사장 직분의 타락상을 보여 주었다

권력으로 변화하는 3 대제사장 악행과 헬라 문명으로 인한 영적 타락의 변모

4). BC175-BC159년. 헬라 북방 시리아 셀류 쿠스. 안티오쿠스 왕조 지배시대, 3대 대제사장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적그리스도의 성전의 박해와 종교의 무자비한 탄압은 오늘날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한다.

남방의 헬레니즘 문명으로 일부 유대인들의 문명의 타락은 대제사장의 권력으로 변모와 함께 헬라의 신문명으로 유대 종교적 생활을 병들게 하며 종교 신앙의 타락에서 오는 많은 시대의 변천을 낳게 한 결과로 초래한다.

정통한 유대인들에 의해 마카비 혁명이 일어난 시대이며 마카비 혁명 이후 독립된 하스몬가 왕조가 탄생된다.

아스몬 왕가는 헬레니즘 문명으로 그 왕가 후손들마저 헬라 이름으로 바꾸는 등 헬라 문명을 문명 동경하므로 대제사장의 자리를 권력과 귀족으로 생각하는 통치이념은 왕조의 형제 왕자 간의 권력 다툼과 함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탄생과 두 파 벌이 권력다툼은 피를 부르는 얼룩진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신구약 중간사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다.

4-1). 북방의 통치 시대 신구 약사에 기록된 극악한 3대 대제사장

알렉산더 정복 후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는 남방과 북방의 전쟁

남방이 패전하자 BC.198년 북방 셀류크스. 안티오쿠스 왕조의 지배에 들어간다.

북방 안티쿠스 에피파네스 4세 통치 시대는 할례, 안식일 준수, 율법 준수 등 모든 예배 생활을 금지하면서 유대교를 극심하게 탄압했다.

북방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자신들의 종교 탄압 정책에 동조하는 악한 친 헬라 세력의 유대인들로 차례로 3대 걸쳐 대제사장에 임명했다.

북방 왕의 종교 탄압은 결국 마카비 혁명 발발은 ( BC167년) 화산에 분화구 터지듯 결국 정통파 유대인들은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 비록 긴 세월은 아닐지라도 약 100년이란 기간 자치 독립 유대 왕조가 탄생된다.

4-2). 헬라파 유대인 대제사장들의 등장

헬라시대 북방 왕부터 시작된 대제사장 자리는 아론의 대제사장 혈통을 제외시킨 가운데 통치자에 의해 통치자를 협력하는 친 헬라파 유대인으로 임명이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