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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으로 임명된 이들

blessing u 2019. 11. 22. 09:26

 

대제사장으로 임명된 이들

*.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대제사장 들

52대 파비의 아들 예수 (BC 30-BC24년) 직무 6년

57대 시에의 아들 예수 (BC4년-AD6년) 직무 10년

74대 담누스의 아들 예수 (AD 62년-AD63년) 직무 1년

75대 가말리엘의 아들 예수 (AD63년-AD64년) 처가 보에듀스 가문. (헤롯 장인 시몬 가문)

; 53대 시몬 대제사장 (BC24년-BC5년 헤롯 대왕의 셋째 부인 마리암네 2세의 장인)

헤롯의 장인 시몬. 보에듀스의 아들 19년 직무.

헤롯은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제사장 시몬의 딸 마리암네 2세의 미모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결혼에 앞서 그 가문의 지위를 격상시켰으며 대제사장 예수를 급히 파직하고 그의 장인이 될 시몬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처럼 헤롯은 단지 자기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멋대로 대제사장을 파직 임명했으며 시몬은 BC24년에 임명되어 약 19년간 대제사장으로 활동하여 헤롯 가문의 지배기간 중 가장 오랫동안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BC5년경 미리암네 2세는 헤롯의 본처 도리스의 장남 아들 안티파터와 헤롯의 형제 페로라스와 공모하여 헤롯을 죽으려는 살인 음모를 묵인했는데 그것이 발각되어 헤롯에게 이혼당했다 이때 미리암네 2세의 부친 시몬도 대제사장직에서 파면되었다

대제사장 시몬의 부친 보에듀스의 가문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애굽 지역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시몬 이후에도 보에듀스의 가문에서 대제사장이 여러 명 나오는데 헤롯이후 AD70년 유대 멸망하기까지 보에두스 가문 출신은 5명이다.

*. 헤롯 대왕의 장인 시몬의 보에듀스 가문 대제사장들

53대 시몬 BC24년-BC5년 (헤롯의 셋째 부인 미리암네 2세 , 헤롯의 장인, 19년 직무)

55대 요아살 BC4년 시몬의 아들

58대 요아살(재임명) AD6년 시몬의 아들

56대 엘르아살 BC4년 시몬의 아들

66대 시몬 칸데라스 AD41년-AD42년 시몬의 아들

75대 가말리엘의 아들 예수 AD63년-AD64년 총 1년. 그의 아내가 보에듀스의 가문

; 54대 맛디아 대제사장 (BC5년-BC4년 데오빌루스의 아들 맛디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때의 대제사장으로 추정

맛디아는 예루살렘 출신 데오빌루스의 아들로 기록 BC5년 헤롯 대왕이 다섯 번째로 임명한 대제사장으로 BC4년 3월에 해임되었다

헤롯과 온 예루살렘은 BC4년 2월경 동방박사들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하였다

헤롯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라고 묻자 그들은 미가 5:2에 예언된 대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다(마 23:6)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자기 아들 안티파터를 죽이고 5일 후에 자신도 죽었다

맛디아는 대속죄일 전날 어떤 여인과 동침하는 꿈을 꾸어 자신이 부정하게 되자 자신의 친척인 엘리무스의 아들 요셉 하여금 속죄일 하루 동안만 대제사장직을 대행하게 했다

이후 헤롯이 심히 병들어 있을 때 유대의 저명한 율법학자 두 명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헤롯이 성전에 세운 황금 독수리 형상을 헐어버린 사건이 있었으며, 헤롯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맛디아를 파직하였다

; 55대 요아살 대제사장 (BC4년 보에듀스 가문. 헤롯의 장인 시몬 아들 요하살 )

헤롯의 셋째 부인이며 헤롯의 장인인 시몬의 아들로서 보에두스 가문에서는 부친을 이어 두 번째 대 제사장이며 헤롯 대왕이 마지막으로 임명한 자이다

BC4년 초 헤롯은 맛디아 대제사장을 해임하고 대신 처남 요아살을 임명한 후 그해 유월절 직전에 죽었다

헤롯 대왕 사후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헤롯 아켈라오는 (BC4년-AD6년) 부친을 위해 7일간 애곡 하였으며 얼마 후 유월절 축제 가 열렸다

이때 모인 군중들 가운데 소요가 일어나 아켈라오의 군인들이 일반 백성 3000명을 살해한 일이 있었다.

헤롯의 아들인 아켈라오 와 안티바스가 왕권의 승계 문제로 로마에 가서 아우구스투스의 판결을 받으러 갔을 때 요아살 대제사장도 로마로 유대의 대표단으로 가서 왕권을 유대인에게 돌려줄 것을 청원 한다 로마에서 돌아온 후 아켈라오왕은 요아살 대제사장을 경질시킨다. 요아살 대제사장의 해임 (BC4년)

; 56대 엘르아살 대제사장 (BC4년 보에듀스의 아들 엘르아살)

보애두스 가문의 부친에 이어 세 번째 대제사장이며 AD4년 아켈라오가 임명한 첫 번째 대제사장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사절단을 보내서 자신들의 율법에 따라 살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청원하였다

그 자리에서 헤롯 아켈라오의 부정을 고발하면서 유대를 수리아에 병합시켜 왕권 통치나 그와 유사한 정부 형태가 아닌 로마 파견 총독의 통치를 받게 해 달라고 하였다

아켈라오는 대제사장 요하살이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해임시킨 후 그의 동생 엘르아살을 대신 임명한다.

아켈라오는 조상들의 율법을 어기고 그의 형인 알렉산더의 아내이자 갑바도기아 왕과 아켈라우스의 딸인 글라피라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유대인들은 이일로 그를 더욱 증오하였다

엘르아살을 대제사장직에서 1년도 못되어 해임시키고 시에의 아들 예수가 대제사장에 임명한다.

; 57대 예수 대제사장 (BC4년-AD6년 시에의 아들 예수)

예수는 시에의 아들로 기록되어있다 헤롯 대왕 이후에 등장한 대제사장 중에 예수란 이름을 가진 자는 네 명이다.

52대 파비의 아들 예수 (BC 30-BC24년) 직무 6년

57대 시에의 아들 예수 (BC4년-AD6년) 직무 10년

74대 담누스의 아들 예수 (AD 62년-AD63년)

75대 가말리엘의 아들 예수 (AD63년-AD64년) 처가 보에듀스 가문. (헤롯 장인 시몬 가문)

; 58대 요아살 대제사장 (AD6년 재임명, 보에듀스 가문의 시몬 아들 요아살)

요아살은 보애두스 가문의 네 번째 대제사장이며 재임명된 자다.

BC4년에 약 1년간 대제사장을 지낸 적이 있으며 AD6년 아켈라오에 의해 재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AD6년 다시 아켈라오왕에 의해 요아살이 대제사장에 재임명된 후 얼마 못되어 로마 당국은 분봉왕 헤롯 아켈라오왕을 해임시킨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유대인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려는 목적으로 “호적하라.” 는 명령을 내렸는데 당시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이를 시행하였다 당시는 요아살이 해임되기 얼마 전이었는데 그는 세금 징수에 거세게 반발하는 유대인들을 설득하여 잠잠하게 하였다

아켈라오왕이 추방된 후 수리아 총독 구레뇨(퀴리니우스)는 요아살 대제사장이 권력을 남용하였다는 이유로 대제사장에 해임했다

요세푸스는 호적이 다 이루어졌을 때 가이사 아구스토가 악티움 해전(AD31년)에서 안토니우스에게 이긴 지 37년째 되는 해는 AD6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헤롯 아켈라오 분봉왕 3대의 대제사장 임명권 BC4년-AD6년

성경에는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가. 헤롯 아켈라오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이 되었다 함을 듣고 두려워하여 유대로 가지 않고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 2:22-23)

헤롯 아켈라오는 헤롯 대왕과 네 번째 부인 말데이스(사마리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롯 대왕이 죽기 전에 그를 첫 번째 후계자로 임명했다

BC4년부터 AD6년까지 약 10년간 치리 하였으며 유대. 사마리아. 에돔 등 헤롯이 통치하던 지역의 절반을 통치하였고 세 명의 대제사장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즉위한 첫해 주전 4년 유월절에 반란의 기미를 보이는 유대 군중 약 3000명을 무차별 살육한 일과 폭도들을 지지했다는 구실로 대제사장을 파면한 일. 아내와 이혼하고 불의하게 재혼한 일등으로 유대인의 원성을 샀다

결국 유대인들이 아켈라오를 로마 황제에게 고소하여 그는 당시 골 지방의 한도 시인 비엔나로 추방당한다.

이후로 다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 유대 지방을 치리 하였다 (아그립바 1세가 개입하여 파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