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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여정 2

blessing u 2020. 8. 26. 08:06

 

아브라함의 여정 2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첫 번째 나타나셔서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신다(창 11:31, 행 7:1-4, 창 12:1-3) 창 12:1에서 보면 본토(갈대아 우르) 친척(롯을 포함한 친족) 아비 집(데라, 나흘)을 떠나 아브람만 떠나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브람은 우르를 떠날 때 데라, 사라, 롯을 데리고 떠났으므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하였다. 아브람은 어디로 떠나야 할지를 모르고 떠났으며(히 11:8) 이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북부에 위치한 하란에 머문다.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몇 년 전에 순종해야 할 아브람은 뒤늦게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였다(창 12:4-9). 창 12:1-3의 약속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를 때 말씀하신 것으로 하란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1. 우르(히, 울):

도시를 의미하나 ‘빛의 나라’ ‘해 떠오르는 땅’ ‘불’을 뜻하기도 한다. 우르는 수메르 성읍들 중 가장 큰 성읍의 하나로 대체로 메소포타미아 남쪽 지역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하류에 위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곳에 위치한 우르는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다. 우르는 홍수 이전의 성읍이었는데 홍수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우르 왕조의 최초의 통치자는 메샨니팟다로 언급되었으며 80년 동안 지배했던 것으로 본다. 야만인 구티족을 축출해낸 우륵의 우투헤갈의 신하였던 우르의 우르-남무는 세 번째 왕조를 건설하였으며 아브라함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선 사람으로 역사상 가장 앞선 법전을 선포했다. 기원전 20세기경 우르의 마지막 왕이었던 '입비신'이 셈족인 엘람 족속과 아모리인에게 멸망하고 엘람에 죄수로 잡혀갔으며 그동안에 우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우르의 멸망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에서 계속 지배권을 연장하려던 수메르족의 최후 시도도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수메르의 종교와 문화는 수 세기 동안 근동 지방에 영향을 주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읍으로 토지는 매우 비옥하고 생활은 부유했으며 공업, 농업, 어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대상들을 통하여 구리와 돌을 싣고 바사만을 항해했다.  그 후 우르가 바벨론에 가려졌으나  바사 시대까지 중요한 성읍으로 남아있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은 바사만으로부터 약 160㎞ 지점에서 합쳐진다. 아브라함 시대에 이 만은 우르까지 뻗쳤다. 바벨론 평원은 모두 이 두 강의 퇴적물로 형성되었다. 강의 진로는 자주 바뀌었다. 이때에 바사만은 쑥 들어가고 유프라테스 강은 진로를 바꾸어 동쪽 16㎞로 흘렀다. 따라서 우르는 방치되어 사막의 모래에 묻혔다.

 

우르는 고대 수메르와 바벨론의 도시로 한때 달을 숭배하여서 월신 나나를 섬기는 많은 신전들이 있었다. 우르는 수메르인, 바벨론인, 갈대아인, 구스인, 아라비아인들이 거주하던 이교도 지방의 전형적인 이교도 성읍이었다. 이곳에는 거짓 신들과 그들의 성전이 있었고 이교도 제사장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우르 지방의 종교적 유산은 바알 숭배, 천문학, 이단, 별 숭배, 탐무스 숭배, 하늘의 여왕(아스타르테, 이쉬타르, 이스터, 마리아, 비너스, 아프로디테)등의 숭배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잡신을 섬겼던 조그마한 제단들이 곳곳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2. 하란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인 에뎃사에서 40㎞ 떨어진 무역의 중심지이다(겔 27:28)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그의 가족들을 이끌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문다.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800㎞이다. 데라가 죽자(창 11:32) 그는 그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양 떼와 일꾼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간다. 라반의 고향이며 야곱이 에서를 피해 20년 동안 지낸 곳이다(창 28:10)

 

 

3. 세겜

하란에서 가나안 땅의 세겜에 첫발을 디딘 아브라함은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거하고 그곳에서 단을 쌓았다. 세겜 성은 히위족속이 세웠거나 그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창 34:2)으로 이곳은 중앙 팔레스타인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4. 벧엘

예루살렘 다음으로 성서에서 많이 나오는 중요한 성읍으로 아브라함 때에는 루스라고 불렀다. 힉소스왕 초기에 지었는데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주 때 여호수아에게 점령당했다. 아브라함은 세겜에서 벧엘로 내려와 장막을 치고 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애굽(창 12:10-20)

벧엘에서 애굽으로 피한 것은 기근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에게 자기 부인의 순결을 위태롭게 하였으며 하나님은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재앙을 내렸으며 아브라함을 애굽에서 내어보냈다.

 

애굽은 BC2700-2200년(피라밋대) 고왕국대에 문화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왕을 태양신의 화체라하여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왕이 살고 있는 궁전의 이름을 따라 바로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큰 집’이라는 뜻이다. 왕의 시체를 섞지 않게 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세웠는데 가장 큰 피라미드는 제4왕조 쿠후가 건축한 것이다 쿠후 계승자 카후레는 자기 얼굴을 스핑크스에 조각하여 사자의 몸에 붙여 피라미드를 지키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나와 전에 단을 쌓았던 벧엘로 돌아왔다. 이때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이별을 하게 되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였고 아브라함은 나머지 부분을 선택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발달한 문명 속에 도덕적 타락과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부패 속에 있었다(창 13:13)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 자손 번성의 축복을 해 주셨다.

 

 

5. 헤브론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26.6㎞ 지점의 계곡 동쪽 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읍이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주변의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의 무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이라고 하는 헷 족속으로부터 가족의 매장지로 막벨라에 있는 굴을 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다(창25:8-10)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지역이 상당히 사회적 불안이 있었다.

 

창 13-14장: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와서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훈련된 자들을 데리고 단과 호바까지 가서 그돌라오멜을 물리치고 롯과 탈취물을 가지고 내려오던 중 살렘(예루살렘)에서 그곳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렸다.

 

창 15-19장

헤브론을 중심으로 서쪽의 그날과 남쪽의 브엘세바 까지를 생활의 거주지로 삼았다. 롯을 구출한 후 헤브론에서 지내는 동안 자손 번성과 아브라함이란 새 이름을 받았고 약속에 대한 축복의 증표로 할례를 베풀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구하기 위해 6번의 중보기도로 간구하였으나 유황불로 멸망당하였고 롯은 구출되었다.

 

 

6. 그랄

아브라함은 애굽에 갔을 때와 같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여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으나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현몽함으로 위기를 넘기고 은 1,000개를 받은 후 그랄에서 나왔다. 이후 사라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낳고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다시 아브라함 집으로 돌아왔다.

 

이스마엘의 후예: 오늘날의 아랍인

 

그날은 중앙 산악지대에 위치한 가사 남동쪽 약 17.6㎞ 지점에 있는 작은 언덕이다. 족장 시대(청동기시대)에 상당히 번성했다.

 

 

7. 브엘세바

아브라함은 그랄왕 아비멜렉과 화평의 조약을 맺고 서로 맹세한 후 그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고 하였다. ‘세바’는 문자적으로 ‘명세, 일곱’을 ‘브엘’은 ‘우물’을 뜻한다. 이곳에서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쪽 45㎞ 현재 비르세바 동쪽 약 6.4㎞ 지점인 네겝 지방의 주요 성읍이다. 이스라엘 조상 때부터 종교적인 성소이며 작은 도성이지만 BC10세기까지 벽이 존속되었다가 BC9세기 초 파괴되어 다시 세워졌으며 BC8세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다.